성신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였고, 페인팅을 중심으로 다양한 매체를 시도하며 작업을 해왔다.
2018년 <The New Wave> 단체전에 사진 작업으로 참여하고, 2019년 <Immersion> 단체전에는 회화 작업과 영상 작업으로, 2021년 <COLOUR> 단체전에서는 아크릴 다면화 작업으로 참여하였다.
이미 알려진 아름다움보다는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칠법한 대상의 아름다움을 ‘예쁜 구석들’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시도중이다.
대표작으로는 <찌꺼기들> 시리즈가 있는데, 아크릴 물감 사용 후 남게 되는 아크릴 찌꺼기를 오브제로, 주재료로 활용한 작업으로 예술의 변두리에 있던 소재를 중심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이다.
<출품 작품>
작품 설명
흔히 예쁘다라고 하면 ‘생긴 모양이 아름다워 눈으로 보기에 좋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예쁜 구석이 있어야~”라는 표현을 쓰면서 예쁜 구석을 마음에 드는 부분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나는 예술의 변두리에 있는, 주목받지 못하는 소재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가치상승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그 중에서도 이번 <찌꺼기들> 시리즈는 아크릴 작업을 하고 팔레트에 남은 아크릴 찌꺼기를 사용한 작업으로, 떼어낸 찌꺼기 뒷면의 압착된 색면과 두께 차이로 인해 뜯어지면서 발생한 아웃라인에서 생명체의 형상을 발견하고 이를 도감처럼 모아 전시하였다.
찌꺼기를 그대로 붙이기도 하고 눈이나 특정 부위를 암시하는 드로잉을 더해 생명력을 불어넣어 독특한 찌꺼기 생태계를 구축해나가는 중이다.
전시(단체) 2014년 12th‘보내고’전 (춘천문화원 금병전시실) 2015년‘樂 & roll’전 (전주 우진문화공간) 2015년‘미래를 품다’ 한국은행 기획초대전 (춘천 한국은행 갤러리) 2015년‘인사동피서’전 (서울 Gallery M) 2015년‘33artists’기획초대전 (서울 한스갤러리) 2015년 13th‘보내고’전 (춘천미술관) 2016년‘인사동 열매’ 전 (인사동 공평아트) 2017년‘봄을 봄’전 (마포아트센터 갤러리 맥) 2017년 Art Yellow Book #3 국제전 (김포 CICA 미술관) 2017년 PROJECT ZEBRA 2017 (수원 대안공간 눈) 2017년 2017 내마음속의 방 – 그리다 전 (강릉 갤러리청풍)形 2018년 Seoul New Face Art 展 (뚝섬 자벌레문화공간) 2021년 을지아트페어(서울 을지 트윈타워) 2021년 십이지술 12작가 아트페어(춘천 문화예술회관) 2021년 작가노트.zip 전 (서울 문화실험공간 호수) 2021년 제로웨이스트 프로젝트 -‘두번째 만남’전 (춘천 커먼즈필드)
활동 2014 춘천역 벽화작업 (춘천) 2018 DMZ 아트페스타 현수막제작 (양구) 2020 커먼즈필드 사회혁신센터 미니벽화 (춘천) 2020 뚜르뚜 어린이 작업장 벽화(춘천) 2020 춘천 사회혁신센터 자전거캠페인, 커먼즈필드(춘천) 2021 춘천놀이 플라스틱터널 제작 (춘천)
언제나 그림을 그릴 때 내 시선에 집중하고 그림을 볼 때도 내 시선에 의지한다. 반대로 너의 시선은 어떨지 고민하며 담아낸 색들 속에서 너의 색을 찾아볼 수 있길 바라며 작업했다. 뭐라고 이름 붙이면 좋을까 했던 세상은 '나'와 '너'로 이루어져 있었고 '너'의 색들이 섞여 '내'가 되었다.
[출품작품]
작품 설명
세상은 두 개로 나누어진다. 내가 보는 세상과 너가 보는 세상. 이 둘이 섞이고 쌓여 우리는 그 속에서 살아간다. 두 개의 시선을 오가며 균형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내가 그린 세상>은 나의 시선으로 보여지는 세상이다. 내가 보는 세상은 흐릿하고 일렁이다 지워지고 다시 나타나 원래의 형을 잃고 재형상된다.
<너로 만든 세상>은 너의 시선들로 보여지는 세상이다. 내가 보는 세상은 다양한 타인들의 시선들로 만들어진다. 검은 색이 되기 이전에 보여지는 색들은 보는 사람들에 따라 다채롭게 보여지기도 한다.
'시선'이라는 주제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단지 그려진 색과 그림이라는 평면이 아닌 시각예술을 해보고 싶었다. 내 시선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타인들이 보는 시선은 어떨까 하던 고민은 뒤섞여 어두워진 내 시선이 본래의 색으로 돌아가 볼 수 있는 작업을 하게 해주었다.
아크릴판의 투명함을 통해 고여있던 시선이 주위로 녹아들고 본드가 가진 색과 형태가 시선이 가진 특정한 형을 일그러트린다.
우리가 남기는 흔적처럼 조금 더 지저분하게 흐트러지고 늘어지고 쌓여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어쩌면 시선이란게 보여지고 보아질수록 다듬어지고 간결해지는 듯 싶다.
작가 노트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생각대로 인식대로 느낀 대로 자신이 재구축한 세계 속에서 모든 존재를 만들어내 움직이게 한다. 나는 내 작업 속에서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여준다. 내가 보는 그날의, 그때의 감정들에 따라 달리 보이는 사람과 풍경을 담아낸다. 보고 찍고 기록하고 그려내는 행위 속에서 내 시선들의 연결고리를 찾고 있다. 지금의 나는 좀 더 둥근 세상을 본다. 흐릿하게 흘러가는 물 같은 세상을 본다. 그걸 나는 ‘눈이 가는 길’이라고 부른다. 타인과 내 안에서 찾아다니던 존재성을 나는 이제 내가 보는 것들을 나의 안으로 들여와 다시 밖으로 내보내며 그려낸다. 내 눈이 가닿는 어떠한 특정한 이, 공간, 조화, 부분, 사이, 틈 이러한 것들에 머물게 되는 시선에 물음을 던진다. 내가 나로 존재한다는 건 내가 보는 것, 보는 형, 보는 방식에 따라 보여지는 것 아닐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시선을 따라가면 그 사람이 사는 세상을 알 수 있다. 검정과 무채색, 반투명한 트레이싱지를 주로 사용한다. 빛에 따라 투사되어 보이는 세상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드러내었다가 사라지게 해준다. 시선은 현실에 있는 것들을 보지만 시선 끝에 내가 살게 되는 세상은 나만의 허구가 된다. 이 둘의 균형을 작업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고민한다.
애정의 대상을 잃었을 때 비로소 슬픔을 얻고 애도를 하게 됩니다. 충분히 슬퍼하세요. 무언가에 대한 사랑이 끝나고 추억을 회상할 때는 단색광에 서 있는 것처럼 색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 곁에 이미 없는 것을 기억해 낼 때, 흑백사진을 들여다보듯 정확한 색을 기억해내기 어렵습니다. 마르고 색이 바랜 꽃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제껏 내가 느껴왔던,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장 잘 보여준 존재는 '언니' 다. 조건 없이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는 언니 덕분에 지금 내가 살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언니와의 여행 중 기묘한 해변을 발견했다. 돌과 물이 특이하게 어우러져 있는 풍경은 마치 우리 자매가 초현 실 세계에 살고 있는 듯 느껴졌다. 나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듯한 이 해변에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무주건 언니보다 하루 전 날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 내가 언니보다 늦게 죽으면, 정말 정말 슬플 것 같기 때문이다. 평생 나를 챙겨주던 사람이 단 하루라도 없는 것은 너무나도 괴로운 일이다. 나는 죽을 때 까지 이기적인 동생인가보다. 언니는 언니니까 내가 먼저 죽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면 언니는 내가 힘들어 하는 것을 보기 싫을테니까. 하늘에서 내가 먼저 기다리고 있으면, 언니가 오는 날 재밌게 놀 상상을 한다. 우리 자매 모두에게 좋은 것이다.
나는 언니의 사랑과 죽음을 동시에 생각하면서 우리의 어릴적 이미지와 현재의 이미지, 또 우리가 함께 예쁘다고 생각한 이미지들을 한 공간에 담고 싶다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이미지들이 한 군데에 어우러져 내가 기묘한 해변에서 느꼈던 초 현실성,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사랑을 말하는 문장 두 개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내가 바라는 것을 강렬하게 사랑하면 어느새 그건 나의 일부가 된다.’와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 가사 중 ‘하나일 때보다 난 외롭고 허전해. 니가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인가.’를 차용하여 사랑을 설명한다. 사랑은 갈망하며 얻는 상대의 일부가 나의 것이 되는 것(구조), 사랑을 통해 나의 일부를 주는 것(해체)의 반복이다.
사랑의 정원에서는 삶을 매개체로 모든 사물의 해체와 구조가 이루어진다. 정원의 중심부에서는 알을 깨는 것이 아닌 찢고 나오는 사람, 즉 작가 본인이 탄생하고 있다. 인물과 정원 요소들의 일부가 치환된 점이 사랑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원 곳곳에서는 관람자의 기시감을 이끄는 물체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