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개

거울틀을 가져 오고 나서 그동안 제가 버리지 못하고 방치한 물건들을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여기저기에 방치한 물건들은 그 동안 나를 관찰하고 내 ‘기억과 감정을 저장’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단지 추억뿐만 아니라 공포나 후회 그리고 기억이나 감정의 ‘왜곡과 착각마저’ 저장하고 그대로 방치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혹시 시시콜콜 한 기억이 종종 떠오릅니까?
자주하는 말버릇이 있습니까?

저는 누군가와 대화하던 도중에도 갑자기 어떤 한 단어에 번뜩! 별 일 아닌 예전 기억을 떠올려 말하곤 합니다.
꽤 잘 기억하는 편이고 두서없이 장황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아니면 쓸데없는 물건은 좀 버리라는 말을 들으십니까?
오래된 물건이나 밖에 버려진 물건에 자꾸 시선이 가게 됩니까?

제가 바로 그렇습니다.
망가지고 유행이 지나 쓰지도 않는 물건들을 바로 버리지 못 합니다.
물건을 집안 한 구석 어딘가에 두었다가 이따금 만지면 물건과는 상관없는 옛날 기억이 떠오르곤 합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경험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듣지 않는 옛날 노래 테이프나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 영화의 극장표, 이전에 살던 집 열쇠 등을 넣어둔 운동화 박스 하나 정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오랫동안 쓰던 물건들처럼 감정이나 예전에 했던 말도 낡고 방치되는 기분이 듭니다.
분명 쓸모없어 진 건 아닌데.

이렇듯 서로 상관없는 이야기를 늘어트려 놓고 또 금방이라도 다른 말을 꺼냅니다.



ANTI ROMANCE 76X39.5X9.5cm mixed medium 2021
ANTI ROMANCE mixed medium 77.5X39.5X9.5cm 2021
이기훈 ANTI ROMANCE mixed medium 28.5X38.5X9.5cm 2022
이기훈 ANTI ROMANCE mixed medium 31.5X35X11.5cm 2022




작품 설명

‘감정과 기억의 왜곡, 연속된 현재를 만드는 착각에 대한 이미지’

이번 전시에서는 2021년 ‘ANTI ROMANCE’ 작품을 같이 설치하여,
마치 “그 날 하지 못하고 담아 두었던 말”이나 “아차! 싶어 잊고 싶은 말”, “이제야 뜻을 알게 된 어떤 말” 또는 “입가에 맴돌던 단어”처럼, 지금 다시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작가 노트 

영화 행복한 사전(2013)’에서는 오른쪽에 대해 서쪽을 봤을 때 북쪽의 방향.

책을 넘길 때 짝수 페이지.

숫자 10에서 0의 위치.”라고 정의 하는 장면이 나온다.

 

국어사전에서는 오른-: 명사. 북쪽을 향했을 때의 동쪽과 같은 쪽. 오른편. 바른쪽. 바른편. 우면(右面). 우방(右方). 우측(右側). 우편(右便). 이라 정의하고 있다.

누구는 오른쪽을 정의해 보아라.”라고 했을 때 자신의 오른쪽을 쳐다본다.

이처럼 누구나 알고 있을 거 같은오른쪽을 이해하려면 오른쪽과는 전혀 상관없는 수십 개의 단어를 나열해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사람들에게 어떤 한 가지를 이해시키고자 한다면 또는 나와 다른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자 나누는 대화의 행위는 사실 많은 단어들을 말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각각의 단어를 검증하며 적절한 비유나 예시를 들어야 할 것이다.

간혹 누군가와 이심전심의 경험이 있다면 단지 우연이거나 자신만의 착각 일 수 있다.

 

ANTI ROMANCE 작업노트 2019.

 




작가 소개

 

 

 

 

모든 사회는 저마다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인적자원을 양육하고 공급하기 위하여 많은 종류의 교육적 시스템을 활용한다.
교육과 훈련이 때로는 공동체 구성원들로 하여금 저마다의 위장(포장된 말들과 행동들)의 기술을 요구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여러 곳에서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어와 공격의 수단을 가지고 자신을 보호하며 저마다의 공간을 확보하려 애쓰고 있는 듯 하다.

이러한 사회 구조를 목격하며 성장하였고, 공동체의 틀 속에서 배척당하지 않기 위하여 즐겁고 행복하게,
때론 장난스럽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위장하며 생활하였다.
밝고 긍정의 모습들만 요구되는 사회속에서 불안과 우울, 환멸과 무너짐, 고통의 감정들은 내면에 자리잡고 하나의 군집으로 형성되어 또 다른 내 자신이 되어 살아가고 있었고 때론 나만의 안신처가 되어 주었다.

지금 사회는 개인의 감정 표현이 이전 세대에 비해 더 중요해진 듯 보인다.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과장한다.
‘당신의 브랜드 가치를 올려라’ 와 같은 말이 일상화된 오늘, 사람들은 여러 소셜 미디어를 통해 ‘나-상품’ 의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홍보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 ‘좋아요’와 ‘팔로워’의 수는 저마다 인지도와 값어치를 반영하는 것으로 중요하게 여겨지기 떄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자신을 과대포장하고 본 모습과 다르고 과장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각 개인이 소속되어 있는 지역사회와 공동체가 규정해 놓은 규칙에 의해 행동하게 되고, 각 개인의 내면은 제대로 존중받지 못한 채 자기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의 규칙들로 인해 내면의 감정 표현은 점차 미숙해지며 수동적으로 변화 되는 듯 하다.

이로 인해 개인이 해소하지 못하는 감정들은 다양화되고 깊어지고 있다.

본인의 경우 역시 이러한 사회 구조 속에서 내면의 감정을 숨기고 겉으로 포장된 위장의 기술들을 지녔던 경험이 있다. 공동체의 틀 속에서 배척당하지 않기위해 즐겁고 행복하게 때론 장난스럽고 맹랑하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위장하며 생활하였던 것이다.

무겁게 느껴진 과장의 말들과 행동들이 사회의 규율에서 벗어나 미성숙한 방어기제로 표출되어 배척당하고 고립되었다. 이러한 삶의 경험을 내용으로 작품 제작이 시작 되었고, 쌓여가는 내면의 감정들을 해소하고 스스로를 치유하는목적이 되었다.


牛步 , 100x100x130(h)(cm) 이내 가변설치, copper, 2022

 

스르-륵, 60x42x38(cm) , copper, 2022






작품 설명

얼굴도 몸통도 없이, 감정도 없이 주어진 대로 살아가지만,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 내는 모습을 동물의 발 이미지를 사용하여 형상화 한 것이다.

여러 갈래 길이 있고, 그 길을 걸어가는 다양한 형태와 동세로 표현 하였다.
그리고 발에 나타난 동의 부식은 오랜 세월동안의 삶의 흔적을 나타낸다.

그리고 발톱은 교육에 의해 배운 사회성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규율과 규칙에 맞추어 살아가지만
여전히 공격성과 날카로움이 남아있음을 광을 내어 표현하였다.



 


작가 소개


본인의 작업은 일상에서 발생하는 심리적인 갈등에서부터 시작한다.

새로운정보들이 쏟아져 나오고 빠르게 변해가는 사회를 우리는 받아들여야만 살아갈 수 있다.
그것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따라가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급진적인 발전은 인간 소외 문제, 상대적 박탈감, 상실감 등 여러 부정적 감정들을 만들어낸다 .
정돈되지 않은 휘몰아치는 형상의 물감은 우리 사회와 닮아있다.

그 속에서 비쳐 올라오는 인물의 모습은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말하고 있다.
정면을 응시한 채 우리와 시선을 마주치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림 속 인물은 본인이자 현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멍울, 116.7x91.0cm, oil on canvas, 2022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기를 원하고 그것에 못미쳐 불안해한다.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여러 감정들을 느낀다.
슬프기도 기쁘기도 하며 갈망하고 흔들린다.

아무 일 없는 듯 지나가는 저 사람도 마음속에 응어리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간다.
감정이라는 것은 신기하게도 매번 새로운 형태로 찾아와 우리를 휘감는다.

붉은색의 한 획은 흑백 화면위에서 소멸되는 것 같기도, 피어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괴로움이나 불안, 두려움 일지도 모르고 무어가에대한 희망이나 열망일지도 모른다.
내면을 직시하고 감정을 들여다보라.
마음 속 수많은 획, 그 감정들을 온전히 받아들였을 때 각각의 선이 아닌 비로소 하나의 그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완벽할 수 없다. 그렇기에 아름답다.

 

인사를 건네줘 1, 72.7x60.6cm, oil on canvas, 2022
인사를 건네줘 2, 72.7x60.6cm, oil on canvas, 2022


좋은 학벌, 좋은 회사, 높은 연봉, 비싼 차.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삶일 것이다.
안정적인 길. 그것이 좋은 삶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문화적 인식은 우리를 옭아맨다.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아가는 사회공동체 속에서 다른 존재에 대한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철학자 라캉은 말했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하지만 그것이 행복으로 이어질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존재에 집중 할 필요가 있다.
타인은 내가 아니다.
그것을 우리를 온전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나는 나로 살아가야한다.

화면 속 엉켜있는 물감의 형상은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현대인들의 마음을 투영한다.
그 속에서 비쳐 올라오는 인물의 모습은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말한다.
정면을 응시한 채 우리와 시선을 마주치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림 속 인물은 본인이며 현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현대인의 자화상이자 거울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색, 각자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나를 잃지 않고, 나에게 집중해서 나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누군가의 해석, 해설이 아닌 그저 그림과 마주보고 사소한 감정, 자신에 대한 작은 질문이라도 가지고 간다면 그것으로 성공적이다.

우리는 모두가 다르다.

 

 



작가 소개

 

 


민효경_구름으로 쓴 수필_장지에 비단콜라주_42x81_2021
민효경_구름으로 쓴 수필2_장지에 비단콜라주_42x81_2021
민효경_구름으로 쓴 수필3_장지에 비단콜라주_42x81_2021

 

 


작품 설명

아주 작은 물방울이 해와 달을 산란했다.
물방울에 조각난 하얀 해는 때때로 회색 구름이었다가 주황색이 됐고,
달은 청록색이기도 다갈색이기도 했다.

구름의 하얀색엔 항상 투명한 하늘이 따랐지만
검푸른 회색에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비가 함께했고,
어둑한 주황색에는 여름의 7시와 겨울의 5시가,
청록색에는 그 모든 색을 되새기던 밤이 있었다.

그 하늘 안쪽에서, 나는 오지 않을 비에 투명한 우산을 준비하던 날과
따듯한 모래에 앉아 바다에 뜬 노을을 오래 보던 날, 유난히 밝던 밤 등
글자도 없고 표정도 없는 하늘의 모습으로 지나간 기억을,
어떤 날의 낮과 밤과 온도를
말 없는 그림 위에 다시 구름으로 쓰고 있다.

-
<구름으로 쓴 수필>은 개인의 기억을 계절과 온도, 낮과 밤에 따라 변화하는 하늘의 색에 빗대어 만든 작품으로, 모티프가 된 색채는 비 오기 전의 하늘과 유난히 밝던 밤, 저물녘입니다. 기억이라는 오래되고 아스라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반투명한 비단의 뒷면에 그림을 그린 후 구겨 제작했습니다.

 

_우리가 아는 다락방에 네모난 빛이 들어온다_2021_면천에 유기안료,석채_53x41.0cm 

 

 

 

작품 설명 

 

 

우리가 아는 다락방에 네모난 빛이 들어온다.

우리가 아는 상자 위에 얕은 먼지가 쌓여 있었고,

우리가 아는 먼지는 작은 손짓에 떠올라 하얀 춤을 추며 내려오고 있다.

 
 
 


작가 노트

새의 움직임을 관찰하다 보면 그들이 매일 다시 태어나는 것 같았다.
창백한 눈발 아래 어설프게 뭉개 앉아서는 까딱임을 잊고 공중을 응시한다거나, 비행하는 법을 모르는 듯 오른발을 들어 구름 그림자를 따라 밟다가도, 왼발로 멈춰서길 자주 반복하곤 해서 아주 높고 아주 낮은 그들의 시야에는 익숙해질 수 없는 우주가 펼쳐져 있는 것은 아닐까, 자주 생각했다.

백지장 같은 공중 위로 매일 다른 모양의 구름과 처음이자 마지막의 빛은 지나갔고, 나는 그런 의미의 겨울과 새의 형(形)을 미시감으로 연결 지어 보며 나의 계절도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이내 새까만 눈이라도 빛내는 새, 아래로부터 차고 올라오는 미온까지도 말이다.

 

 

 


 



작가 소개


<예술관>


예술의 본질을 사전적으로 정의 내리면, “예술은 구체적인 개물(個物)을 통하여 ‘보편적 미의 실체를 공감 포착 표현’을 하고자 하는 기술인 동시에 지적(知的) 활동이다.”

작가는 예술을 사전적으로 정의하고자 할 때, 예술이란 사물에 대한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작가의 심미적 경험을 토대로 나 자신을 초월하여 사물과 하나가 되는 과정을 통해 사물의 본질과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사유세계와 미의식을 작품에 반영하여 나타내는 것이 곧 예술이라고 정의한다.

작가는 대나무의 형세를 빌려 대나무로 표상되는 정신을 작품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다.
동양의 시선으로 대나무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에 대하여 심찰한 결과, 대나무로 나타나는 곧음은 도덕적 태도와 절의정신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따라서 현시대의 정체성 혼란 현상으로부터 나오는 다양한 문제들을 극복하고자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마지막 시선-삶, 117*73cm, 비단에 채색, 2022
마지막 시선-삶Ⅱ, 1265*910cm, 지본 채색, 2022



작품 설명


마지막 시선-삶
임종의 순간, 마지막 시선에 담긴 나의 삶을 상상해보았을 때
나는 타인의 시선이 아닌 온전히 '나의 시선'으로 지난 날을 회상하고 추억하며 눈을 감게 됨을 상상해 보았다.
이와 같은 시각으로 현재 나의 삶을 본 결과, 나는 '타인의 시선'에 '나의 삶'을 두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나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착각했다.
남들이 나에게 바라는 삶이 곧 내가 원하는 삶이라고.
그리고 그들에게 인정 받고자 나를 거짓으로 꾸며 보여주는 모습이 곧 이상적인 삶이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는 왜 타인의 시선에 내 삶을 담으려 했던 걸까?"
이번 <마지막 시선-삶>시리즈에서 '삶'을 상징하는 개성적 매개체는 비눗방울이다.
보편적으로 우리는 비눗방울을 보거나 이를 불어 볼 때면 동심으로 돌아가 과거를 추억하곤 한다.
작가는 마지막 시선에 담긴 지난 삶을 회상하는 매개체를 비눗방울로 하여,
'타인의 눈동자' 안에 '나의 삶'이 가득 담긴 반영된 모습을 시각화하여 작품으로 만들었다.

<마지막 시선-삶 Ⅰ>의 눈동자는 우주와 같은 삶의 공간이자 장임을 나타낸다.
그리고 주변에 비눗방울을 삶의 흔적으로 비유하여 보여준다.

<마지막 시선-삶 Ⅱ>에서는 마지막 시선에 비친 나의 실재적 자아와 삶을 개성적 매개체들로
상징화하여 보여주었다.

작품을 통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본인의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고, 삶의 주체가 되어 능동적으로 원하는 인생을 가꾸길 간절히 바라고 소망한다.





작가노트

< 마지막 시선- 삶 > 에 대하여
임종의 순간 ‘마지막 시선’은 어디에 있을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의식 상태 혹은 의식 불명의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마지막 시선은 눈앞의 것이 아닌 기억의 파편 속,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회상하며 그곳에 마지막 시선을 둔 채 사랑하는 사람들 대한 감사함과 미안함을 생각하며 눈을 감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인생을 담은 단편 영화가 뇌 속을 스쳐 지나갈 때, 세상과 안녕하며 이제 오롯이 지난 삶을 바라보는 일과
영혼과 마주하게 되는 일 밖에 없게 된다.

이때, 우리는 살아온 삶에 대한 주관적 시선만 가질 뿐, 타인의 시선에 대하여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저 그 순간 삶에 대한 판단이 아닌 오직 바라봄과 그 안에서의 감사함 혹은 미안함 등과의 감정과 함께 사라질 뿐이다.
우리는 일생을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자 고달피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그것은 어느 분야에서 성취를 거두며 업적을 남기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이웃과 친구 가족 연인과 사랑을 나누며 누구의 좋은 누군가가 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죽음 이후, 육체적 존재는 사라지고 존재의 흔적만이
남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혹은 어딘 가의 기록 속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흔적을 상상하며,
이를 의식한 이상적인 삶을 창조하기 위해 각자의 꿈의 이야기를 삶 속에 담았을 것이다.
이로 보았을 때 삶이란 현세에 있는 동안 나의 의식과 상상으로 펼쳐진 하나의 장(場)이자 하나의 story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여기에서 드는 의문이 하나 있다.
그 이상이 과연 실질적 나의 꿈이었을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만들어진 꿈은 아니였을까?

작가는 삶- 죽음- 흔적을 키워드로 묶어 삶이 허무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마지막 시선에 그려질 나의 삶이 담긴 비디오가 어떻게 그려질 지를 상상하며 타인의 시선에 나의 삶을 담으려고 했는가를 자신에게 물어보고, 내면의 소리에 집중해 보자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디에 초점을 두고 인생을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마지막 시선- 삶> 작업을 통해 그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는 것을 진실로 돕고자 한다.

2021.1.11. 작가노트




 


작가 소개

"눈으로 말해요"


[출품 작품]

 

 

사랑/acrylic on canvas/100*80.3/2022

 

 

 

 

꿈이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성공만을 위한 것이 아닌
이것을 하기 위해 태어난듯이
멈출 수가 없다.
단지 더 오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유혹/acrylic on canvas/40*40/2022

 

 

 

 

 

주변 화려한 시선들에 흔들리지 말 것

 

 

 

 


 

축복/acrylic,modeling paste on canvas/53*45.5/2022

 

 

 

 

 

하늘에 햇살이 날 꽃처럼 바라본다.
자신만이 확신할 수 있는 믿음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태양처럼/acrylic on cavas /53*45.5/2022

 

 

 

 

 

 

살아가는 모든 곳엔 시선이 존재한다.
그것들을 피할 수 없으며
받아드리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야 한다.

눈을 뜨자마자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태양처럼
사람의 눈동자가 떠오른다.



 

 

 


 



작가 소개

사람들이 푹 빠져 체험하고 소통할 수 있는 미디어와 공간을
만드는 인터렉티브 미디어 아티스트입니다.

관객이 작품의 인터렉션을 경험하는 동안 각자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주로 프로그래밍을 통해 사운드가 비주얼로, 또는
인터렉션의 결과가 사운드로 나타나는 작업을 진행해왔습니다.


[출품 작품]

 

 

힐끔, 1920*1080, 인터랙티브 미디어, 2022

 



작품설명

누군가로부터 받고, 누군가에게 흘렸던 시선의 무게. 가볍게 흘린 시선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작가 소개

 


[출품 작품]

 

 

_너무 가깝고 멀어 볼 수 없다_, 2022, gimi Kim
_너무 가깝고 멀어 볼 수 없다 #2_, 2022, gimi Kim
_너무 가깝고 멀어 볼 수 없다 #3_, 2022, gimi Kim
<너무 가깝고 멀어 볼 수 없다 #4>, 13x18cm(3ea), 2022.



작품 설명

<너무 가깝고 멀어 볼 수 없다>, 2022

연인들은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서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관계의 시작에 있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진하게 빠져들어 서로의 본모습과 속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반대로 관계가 진전되어 서로의 본질을 알게 되었을 때는
편하고 친근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시선의 부재가 잇따르기 일쑤이다.

신작 <너무 가깝고 멀어 볼 수 없다>에서는 이와 같은 연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진 속 인물들은 실제 교제 중인 커플들이지만 사진 속 연출과 이야기가 그들의 관계 속에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가정된 사실을 제시하고 그들은 나의 요구에 맞게 소통하고 연기해주었다.

이 과정에서 그들 또한 시간의 지속에 따른 연인의 거리와 시선의 관계성을 곰곰이 살펴보는 기회를 가졌다.


 



작가 소개

성신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였고, 페인팅을 중심으로 다양한 매체를 시도하며 작업을 해왔다.

2018년 <The New Wave> 단체전에 사진 작업으로 참여하고, 2019년 <Immersion> 단체전에는 회화 작업과 영상 작업으로, 2021년 <COLOUR> 단체전에서는 아크릴 다면화 작업으로 참여하였다.

이미 알려진 아름다움보다는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칠법한 대상의 아름다움을 ‘예쁜 구석들’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시도중이다.

대표작으로는 <찌꺼기들> 시리즈가 있는데, 아크릴 물감 사용 후 남게 되는 아크릴 찌꺼기를 오브제로, 주재료로 활용한 작업으로 예술의 변두리에 있던 소재를 중심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이다.


<출품 작품>

 

날으는 찌꺼기, acrylic on canvas, 40 x 68 cm, 2022
찌꺼기들, acrylic on canvas, 91.0 x 91.0 cm, 2022

 

헤엄치는 찌꺼기, acrylic on canvas, 53 x 65.1 cm, 2021
찌꺼기, acrylic on canvas, 24.2 x 24.2 cm each 84&amp;amp;amp;amp;amp;amp;amp;nbsp;panels, 2021

 



작품 설명

흔히 예쁘다라고 하면 ‘생긴 모양이 아름다워 눈으로 보기에 좋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예쁜 구석이 있어야~”라는 표현을 쓰면서 예쁜 구석을 마음에 드는 부분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나는 예술의 변두리에 있는, 주목받지 못하는 소재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가치상승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그 중에서도 이번 <찌꺼기들> 시리즈는 아크릴 작업을 하고 팔레트에 남은 아크릴 찌꺼기를 사용한 작업으로,
떼어낸 찌꺼기 뒷면의 압착된 색면과 두께 차이로 인해 뜯어지면서 발생한 아웃라인에서 생명체의 형상을 발견하고 이를 도감처럼 모아 전시하였다.

찌꺼기를 그대로 붙이기도 하고 눈이나 특정 부위를 암시하는 드로잉을 더해 생명력을 불어넣어 독특한 찌꺼기 생태계를 구축해나가는 중이다.


 




작가 소개

강연이

Email : kyhee619@naver.com


2015 국립 강원대학교 문화예술대학 미술학과 서양화전공 졸업


전시(단체)
2014년 12th‘보내고’전 (춘천문화원 금병전시실)
2015년‘樂 & roll’전 (전주 우진문화공간)
2015년‘미래를 품다’ 한국은행 기획초대전 (춘천 한국은행 갤러리)
2015년‘인사동피서’전 (서울 Gallery M)
2015년‘33artists’기획초대전 (서울 한스갤러리)
2015년 13th‘보내고’전 (춘천미술관)
2016년‘인사동 열매’ 전 (인사동 공평아트)
2017년‘봄을 봄’전 (마포아트센터 갤러리 맥)
2017년 Art Yellow Book #3 국제전 (김포 CICA 미술관)
2017년 PROJECT ZEBRA 2017 (수원 대안공간 눈)
2017년 2017 내마음속의 방 – 그리다 전 (강릉 갤러리청풍)形
2018년 Seoul New Face Art 展 (뚝섬 자벌레문화공간)
2021년 을지아트페어(서울 을지 트윈타워)
2021년 십이지술 12작가 아트페어(춘천 문화예술회관)
2021년 작가노트.zip 전 (서울 문화실험공간 호수)
2021년 제로웨이스트 프로젝트 -‘두번째 만남’전 (춘천 커먼즈필드)


활동
2014 춘천역 벽화작업 (춘천)
2018 DMZ 아트페스타 현수막제작 (양구)
2020 커먼즈필드 사회혁신센터 미니벽화 (춘천)
2020 뚜르뚜 어린이 작업장 벽화(춘천)
2020 춘천 사회혁신센터 자전거캠페인, 커먼즈필드(춘천)
2021 춘천놀이 플라스틱터널 제작 (춘천)



언제나 그림을 그릴 때 내 시선에 집중하고 그림을 볼 때도 내 시선에 의지한다.
반대로 너의 시선은 어떨지 고민하며 담아낸 색들 속에서 너의 색을 찾아볼 수 있길 바라며 작업했다.
뭐라고 이름 붙이면 좋을까 했던 세상은 '나'와 '너'로 이루어져 있었고 '너'의 색들이 섞여 '내'가 되었다.



[출품작품]

내가 그린 세상 아래, 45.0x37.7, oil on acrylic panel, 2022
내가 그린 세상 위, 22x16.2, oil on paper, 2022
내가 그린 세상 틈, 22x16.2, oil on paper, 2022
내가 그린 세상 한 가운데, 48.7x94.6, oil onacrylic panel, 2022
너가 만든 세상 아래, 45.0x37.7, glue on acrylic panel, 2022
너가 만든 세상 위, 30.0x21.0, glue on acrylic panel, 2022
너가 만든 세상 틈, 30.0x21.0, glue on acrylic panel, 2022
너가 만든 세상 한 가운데, 48.7x94.6, glue on acrylic panel, 2022






작품 설명


세상은 두 개로 나누어진다. 내가 보는 세상과 너가 보는 세상. 이 둘이 섞이고 쌓여 우리는 그 속에서 살아간다.
두 개의 시선을 오가며 균형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내가 그린 세상>은 나의 시선으로 보여지는 세상이다. 내가 보는 세상은 흐릿하고 일렁이다 지워지고 다시 나타나 원래의 형을 잃고 재형상된다.

<너로 만든 세상>은 너의 시선들로 보여지는 세상이다. 내가 보는 세상은 다양한 타인들의 시선들로 만들어진다. 검은 색이 되기 이전에 보여지는 색들은 보는 사람들에 따라 다채롭게 보여지기도 한다.

'시선'이라는 주제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단지 그려진 색과 그림이라는 평면이 아닌 시각예술을 해보고 싶었다.
내 시선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타인들이 보는 시선은 어떨까 하던 고민은 뒤섞여 어두워진 내 시선이 본래의 색으로 돌아가 볼 수 있는 작업을 하게 해주었다.

아크릴판의 투명함을 통해 고여있던 시선이 주위로 녹아들고 본드가 가진 색과 형태가 시선이 가진 특정한 형을 일그러트린다.

우리가 남기는 흔적처럼 조금 더 지저분하게 흐트러지고 늘어지고 쌓여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어쩌면 시선이란게 보여지고 보아질수록 다듬어지고 간결해지는 듯 싶다.








작가 노트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생각대로 인식대로 느낀 대로 자신이 재구축한 세계 속에서 모든 존재를 만들어내 움직이게 한다.
나는 내 작업 속에서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여준다.
내가 보는 그날의, 그때의 감정들에 따라 달리 보이는 사람과 풍경을 담아낸다.
보고 찍고 기록하고 그려내는 행위 속에서 내 시선들의 연결고리를 찾고 있다.
지금의 나는 좀 더 둥근 세상을 본다. 흐릿하게 흘러가는 물 같은 세상을 본다.
그걸 나는 ‘눈이 가는 길’이라고 부른다.
타인과 내 안에서 찾아다니던 존재성을 나는 이제 내가 보는 것들을 나의 안으로 들여와
다시 밖으로 내보내며 그려낸다.
내 눈이 가닿는 어떠한 특정한 이, 공간, 조화, 부분, 사이, 틈 이러한 것들에 머물게 되는 시선에 물음을 던진다.
내가 나로 존재한다는 건 내가 보는 것, 보는 형, 보는 방식에 따라 보여지는 것 아닐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시선을 따라가면 그 사람이 사는 세상을 알 수 있다.
검정과 무채색, 반투명한 트레이싱지를 주로 사용한다.
빛에 따라 투사되어 보이는 세상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드러내었다가 사라지게 해준다.
시선은 현실에 있는 것들을 보지만 시선 끝에 내가 살게 되는 세상은 나만의 허구가 된다.
이 둘의 균형을 작업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고민한다.

나의 작업은 시선속에 시선을 담아내며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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