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변하는 생각과 느낌을 대부분 놓쳐버리며 살아갑니다. 어쩌다 간절하게 붙잡아 어딘가에 기록 합니다. 마주할 때 스스럼 없는 기록물을 만들어냅니다.
계원예술대학교 순수미술과 중퇴 방송통신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재학
근심이라는 뜻은 '해결되지 않은 일 때문에 속을 태우거나 우울해 함.' 입니다. 우리는 행복보다는 긴 근심에 자주 노출되고는 합니다. 하지만 느껴지는 감정들을 좋다 나쁘다 평가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근심을 즐기려고 합니다. 이 근심은 알록달록하게 끊어지는 리듬과 밀려드는 우울로 파고 듭니다. 그리고 이 감정을 다뤄야 그토록 바라던 짧은 행복이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반드시 이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네요. 그림 속 사람은 근심이 가득하군요. 밝은 색채로 그려진 근심이 주는 느낌을 거부하지 않고, 또렷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얻기 직전이지만, 근심을 느끼는 이 사람은 그것을 알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제 3자는 알고 있습니다. 결국은 해내기 전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세상을 나를 버렸다고 생각할때가 있나요? 우습게도 모든것이 꺽이고 난 뒤에 새로운 날개가 돋고 새로운 세상으로 더 크고 힘차게 날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너무 흔한 이야기인가요? 한번에 모든 사람을 잃고, 모든 환경이 바뀌었을때 저의 곁에 온 강아지 '날개'입니다. 날개는 저를 달고 둥둥 그래요 날아서 딴 세상으로 왔습니다. 무슨 이야기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제는 제 날개를 뺏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함께 나는 중 입니다. 살랑 살랑, 그러나 날개는 알지 못합니다. 뚱 한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하는거냐며 바라만 봅니다.
최근 '질투'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 인데요. 심심했던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사과에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바치는 사과를 던져놓고는, 세 여신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들이 싸우도록 했습니다. 각자의 가진 능력이 다르지만 1등에 얽매여 싸우게 되며, 결국 인간 남자인 파리스에게 제일가는 여신을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선택 과정 속에서도 공정하지 않은 로비가 이뤄지며, 결국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하는데요. 후에 이것을 계기로 '트로이의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전쟁을 불러온 사과에 쓰여진 1등은 얼마나 그 가치가 필요하며 중요했던 걸까요?
집에서도 온 몸이 편히 쉰다는 느낌이 없이, 사방에서 나를 조여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나요?
저는 그럴때 유튜브나 재즈라디오로 랜덤 재즈곡을 틀어놓고는 합니다.
아무도 있지 않는 공간에서도 제대로 쉴 수 없을 때,
엇박의 자유로운 재즈 선율은 어딘가 편안하면서도 마음껏 흐트러져도 된다는 느낌을 줍니다. 성별과 나이, 나라와 시대를 구애 받지 않는 "재즈, 인"이 되어 봅시다.
나의 작업은 ‘드러나는 것에 대하여’ 라는 주제로 시작했다. 나는 어느 공간이나, 분야 등 모든 부분에서 드러나는 것에 관심을 가졌었고, 설득력을 가지거나 변화 따위를 갖기 위해서는 눈으로 보이거나 소리로 들려야 하며, 만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면 가려지는 부분이 있고, 그들이 겹쳐지거나 서로 맞물리는 것이 현대인이 살아가는 순간들 속에 연속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순간들을 잘 포착하고 있는가? 에 대한 궁금증도 생기곤 했다.
우연히 하늘을 보았고, 구름이 날아다니다가 겹쳐지는 순간을 봤다. 그 순간에 차라리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과 가려지는 부분이 느껴진다면 어떨까? 에 대한 생각을 시작하였고, 그 때부터 구름 속에 사람을 드러내거나 감추기 시작한 듯하다.
구름은 눈으로 보이나, 손으로 만질 수 없고, 소리로는 느껴본 적도 없다. 즉, 드러나거나 가려진 물체이고 나도 잘 모르는 공간이다, 라는 나만의 정의를 내렸고, 구름 속에 사는 사람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의 작품 세계관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 있는 존재들이다. 가만히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이거나 옷을 입는 사람, 책을 보는 사람,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사람 등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아가고 있고, 그들은 우리와는 다르게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가려진 부분들을 느낄 수 있고 또한 잘 포착할 수 있다.
작업에서 드러나는 구름들은 겹쳐진 순간의 모습을 나만의 방식으로 재현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그저 하나의 공간으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드러나고 싶을 때 활짝 열리고, 감춰지고 싶을 때는 벽처럼 느껴질 수 있게 나타내고 싶었다. 우리에게는 그런 도피처가 없기 때문이다.
묘한 공간감과 꽉 막힌 벽 같은 공간을 재현해 내는 것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고, 선적인 요소들에서 해답을 찾았다. 내 작업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외각선과 구름의 패턴을 만들어내기도 한 이 선들은 공간 자체를 평면적이고 단순하게 만들어 사람들과 공간과의 거리나 경계를 애매하게 만들었다. 사람이 잘 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구름 속에 감춰진 사람의 모습을 재현해내는 데에 많은 효과를 주었다. 또한 이 선들은 작업의 분위기에 따라 내리는 비나 그림자, 따스한 온기 등으로 그 의도가 변화되어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 그 분위기 자체가 나를 공간과 그 속의 사람들에 대한 적절한 거리감을 주는 듯하였다.
내 작업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쉬운 판단은 아닌가 모르겠다. 다만 나와 같은 사람들이 나서거나 도망가는 것이 아닌, 그저 드러나거나 가려진 정도로만 인식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단체전 2022 케이옥션 프리미엄 온라인 옥션, 케이옥션 전시장, 서울 2022 아시아프&히든 아티스트 페스티벌,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서울 2021 아시아 호텔 아트페어, 안녕 인사동, 서울 2021 100_0 fair, 백영 갤러리, 서울 2021 offon, 백영 갤러리, 서울 2020 고요하고 요란한, 온라인 전시 레지던시 2022 아트 스텔라 김포
"손으로 만질 수 없는 픽셀 사이를 끝없이 어슬렁거린다. 미디어의 빠른 호흡과 편집, 조작, 배포 과정은 인간의 사유방식을 재구성했다.
단편적인 부분만을 기억하는 것, 빠르게 스킵하려는 것, 쉽게 정리된 줄거리만을 포착하는 것 등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이것은 뒤죽박죽, 탈맥락, 흐릿함으로 형용되는데,
많은 경우 미디어의 이미지들은 어떤 목적이나 필요성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로 알고리즘 세계를 표류한다.
작가는 디지털 이미지를 재구성하여 단속적인 파노라마를 증식한다.
어디선가 본 듯한 출처가 불분명한 이미지는 일상의 모습과 닮은 듯 보이지만 오버스럽고 우스꽝스럽다.
의도되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하는 찰나의 순간, 정갈한 질서 속에서 발견되는 한 뜻의 흐트러짐은 매력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그림과 영상에서 이미지는 여러 개의 작은 화면으로 분산되어 나타나기도, 혹은 하나의 큰 화면에서 만나 새로운 서사를 만들기도 한다.
이미지를 포착하는 시선은 하나의 대상이나 상황에 고착되어 있지 않다.
때문에 일관성이 결여된 듯 보이지만 이미지는 결국 하나의 긴 파노라마에서 끊어지고 이어지길 반복한 결과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비물질로 표류하고 있던 이미지는 현실과 비현실의 색채, 뭉그러지고 늘어난 형태의 조화로 화면에 안착한다.
무리 수적으로 나열된 이미지들은 서로의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
<Game Set> (2022) 시리즈는 작가가 설계한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가 실제로 마주하게 되는 레벨의 모습이다.
게임을 제작할 때 플레이하게 되는 공간을 만드는 레벨 디자인은 게임 몰입도를 결정한다.
레벨 안의 무수히 많은 조명들과 표식 이미지 등은 플레이어가 향할 곳을
은근하게 암시하며, 게임의 완성도와 흥미를 높인다.
작가는 역설적으로 플레이어에게 도움이 되는 요소들을 모두 제거하여 레벨을 구성하고,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형식으로 설계해 플레이어를 극한의 가상세계로 끌어들인다.
이를 통해 현실세계의 모방으로서의 가상세계가 아닌 온전한 가상세계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궁극적으로 작가는 매스미디어, 게임, 가상현실 그리고 세 가지 키워드를 연결하는
시각언어의 역할에 대해 질문하면서 다양한 매체로 이를 정리해 나가는 시도를 한다.
<Gongginori>(2022)는 게임 튜토리얼을 영상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게임 종목은 우리나라의 전통놀이인 공기다.
작가는 짧은 게임 소개와 게임 방법, 게임 오버 이슈 등을 텍스트로 설명하면서도,
이미지를 통해 시공간의 연속성을 배제하고 있다.
시공간의 흐름을 벗어난 영상은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의 릴스 형식과 같다.
디지털 형식들이 인간의 의도와 무관하게 무의식 영역에까지 침투한 것은
특정 행위를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해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영상에서는 AI 캐릭터들이 반복적으로 하나의 춤을 추는 행위로 이를 대신한다.
한편, 오래전부터 해오던 놀이를 새로운 이미지로 제시함으로써 시각언어의 역할을 고찰한다.
매스미디어와 함께 게임은 작가에게 주요 키워드다.
현실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것들, 가령 면허가 없는 아이들이 운전을 하고, 총으로 사람을 쏴 죽이는 것이
게임에서는 가능하며 플레이어도 이를 수용한다.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면대면(face-toface)에서 화면 대화면(screen-to-screen)으로 게임의 방식 또한 변화했다.
상대와의 직접적인 접촉 없이도 원격으로 다른 플레이어를 만나거나,
AI와 겨룸으로써 역할 극적 놀이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게임에 참여하는 순간부터 플레이어는 가상세계의 규칙을 따르는 한편, 게임은 의도적으로 행동반경과 시간을 제약하고 환경을 어렵지만 극복 가능한 수준으로 설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