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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충남대학교 회화과 서양화전공 재학중

 

단체전

2020 충남대학교 온라인 전시회 재학생전

2019 대전 예술가의 집 풀이전

2019 충남대학교 과제전

2018 충남대학교 열림전

2018 갤러리카페 미스터콩 충남대학생 전시 수상

2019 제 35회 무등미술대전 특선-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전시

2019 제 31회 대전광역시미술대전 입선-대전 시립 미술관 전시

2018 제 34회 무등미술대전 입선-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전시

 

 


 

슬프고 힘들 땐 비가 오는 날이나 어두운 저녁 시간이 오히려 마음 편안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가 늘 어두운 날만 쳐다보고 있을 수 없듯이, 어두움이 주는 편안함 속에만 머무를 수 없다. 과거의 어떤 기억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뿌연 기억의 늪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다.

과거의 일어났던 일은 하나의 사건일 뿐인데 사람들은 이를 지나치게 비관하거나 자책한다.

마음의 눈으로 보고 느끼는 과거는 유독 칙칙하거나 아파서 지금까지도 나의 마음을 붙들고 있지만, 사실은 그저 있었던 일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에 자꾸 집착이 들 때는 원래의 것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 실제가 나의 기억보다 대단치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제 발길을 돌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를 어둠의 안개 속에 가둔 것도 나의 마음이고 그곳으로부터 다시 끌어낼 수 있는 것도 나의 마음이다.

나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쳐다봄으로써 변화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과거로 인해 여전히 마음은 아프지만 조금만 다른 시선을 취할 수 있다면 어떤 고통도 나를 쉽게 휩쓸어가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인생을 변화시킬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두려움은 피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은 불안을 떨쳐내고 새로운 불안을 맞아들이고 또 다시 그것을 떨쳐내는 과정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평소에 밝은 세계만 바라보려고 한다. 고뇌의 외침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며 인생의 즐거운 면만을 보려는 것은 불성실한 태도이다. 우리는 평소에 아름다운 행복, 기억, 완전함, 안전함 등을 추구한다. 그렇기에 죽음이 주변의 일로 닥칠 때는 지나친 슬픔과 공포에 빠져버리게 된다. 과연 나에게, 당신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았을까. 죽음 역시 우리 인생을 이루는 하나의 과정임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 같았던 시간과 일상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고서야 우리는 시간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더 이상 본인이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시간으로부터 강제로 죽음을 당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시간을 직접 죽이기도 하는 자신을 되돌아 봐야한다. 대부분은 아무도 예외가 되지 못하는 이 근본적인 순환을 외면하거나 부정하려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흘러가는 시간에 나는 충실하고 있는가. 패닉 상태에 빠지는 것은 마음의 길을 잃는 것과 같다. 자신의 마음을 먼저 추스려야 숲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

감각적 쾌락만을 좇는 삶의 결과는 권태와 절망뿐이다. 쾌락만으로 인간은 결코 행복해 질 수 없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윤리적 단계에 따른 삶을 산다. 쾌락만을 좇아 살지 않고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가치와 윤리에 따라 생활한다. 이때 인간은 비로소 선택하고 결단을 내리며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산다. 그런데 인간은 언젠가는 죽을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윤리적 인간으로 살아도 그 노력이 허무하게 느껴지고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 이 불안과 절망을 통해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키르케고르는 인간 모두에게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결코 이 병을 이겨 낼 수 없기에 절망하여 죽을 수 밖에 없다. 병들어 있는 사람은 의사가 진단 내리기 전까지 자신이 건강하다고 착각하기 쉽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자신이 절망 상태임을 좀처럼 깨닫지 못한다. 환자는 자신이 병들어 있음을 깨닫고 나서야 의사를 찾아가는 법이다. 마찬가질 자신이 얼마나 절망 속에 빠져 있는지를 제대로 알아야만 절망에서 빠져나올 길도 찾게 될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사람들이 절망을 얼마나 깨닫고 있는지에 따라, 절망의 정도를 나눈다. 가장 위험한 상태는 자신이 절망에 빠져 있음을 알지 못하는 절망이다. 이는 마치 알코올 중독자 같은 상황이다. 술꾼은 맨정신으로 있을 때가 가장 괴롭다. 그래서 자신이 취해 있음을 잊기 위해 더욱더 퍼마신다. 평범한 사람들도 그렇다. 누구에게나 삶이 무의미하고 버겁게 느껴지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 순간에 삶에 대해 진지하게 물음을 던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고민을 잊기 위해 또 다른 즐거움에 눈을 돌릴 뿐이다. 이보다 더 나은 절망은 자신이 절망하고 있음을 깨닫는 절망이다. 이 단계에 이른 자들은 삶의 허무함과 고통을 더 이상 바깥에서 찾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괴로움이 돈없고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덧없고 무의미한 삶 자체에서 비롯됨을 깨닫는다.

 

삶은 이미 나의 내면에서 끓어 오르고 있다. 삶과 만날 수 있는 곳은 오직 그 곳 뿐이다. 그러므로 삶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려 한다면 맨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결코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하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삶의 의미는 그런 식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면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죽음 역시 삶과 동일한 과정일 뿐이다. 죽음은 적이 아니다. 죽음을 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삶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낼 뿐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두려움 때문에 삶과 죽음을 분리한다. 삶은 원해야 하고 죽음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러한 어리석은 생각이 삶에 끝없는 고통을 초래하는 것이다. 우리가 곧 삶이다. 누구에게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묻지 말아라. 자신이 이해하는 바에 따라 삶을 살아가라.

 

흘러가는 시간 속에 놓인 나의 내면은 어떻게 이미지로 형상화 되는가?

 

나는 인물이 놓인 공간을 드리핑 기법(dripping)을 활용하여 구현했다.

인물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시선, 눈빛, 내면의 감정, 기억들을 표현하기를 바란다.

다양한 사람들이 화면 속에서 관람자를 응시하며 결국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 인간임을 나타낸다.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있는 기억과 감정들을 추상 기법을 사용하여 적극적이고 자유롭게 표현한다. 반복적으로 물감을 흘러내리게 하는 행위는 지속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나타내기도 한다. 지금으로 흘러왔다가 끊임없이 지금을 지나 또 다른 지금을 향하여 나아간다. 내가 드리핑한 물감들은 내 손을 벗어나면 캔버스 위에서 이 물감들이 어느 곳으로 향할지 모르는 채 흘러내리게 된다. 작가의 의도대로, 의도하지 않은 대로 비정형적인 형상으로 창조된다. 이 반복된 행위를 통해 나 스스로의 내면이 표출되고 해소된다.

 

 


 

 

 

[출품 작품]

 

 

 

<The present>, 130.3 x 162.2cm, 혼합재료, 2020

 

 

 


 

 

 

<까를로스>, 162.2cm x 112.1cm, oil on canvas, 2022

 

 

 


 

 

 

 

<우연의 일치>, 112.1 x 145.5cm, oil on canvas, 2020

 

 

 

 

 

 

 

 


 

 

 

아주 평범하고 진실된 그림

 

 

항상 나의 물음표는 채워지지 않았었다. 고백한 건데 나의 이야기가 나에게 납득이 되지 않는 듯하다.

나의 갈증에 대해 답답함을 호소하던 찰나 가장 근본에 다다를 때 비로 소야 그 물음표가 채워졌다.

사소하고 당연하게 넘어갈 수 있는 근본적인 것들에게 물음표를 붙여 보았다.

그리고 그 물음표가 하나 둘 모여 느낌표가 만들어지는 순간 납득이 된다.

그 물음표는 순수하고 가장 진실될 때 발산된다.

 

하얗고 때 타지 않은 캔버스 앞에 앉으면 가슴 먹먹해질 때가 있다.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음표에서 느낌표가 되는 고요해지는 순간 붓질은 시작된다.

작품 앞에서는 솔직한 사람이 되어보자.

 

 

 

- 차유림 작가 노트 중에서 -

 

 

 


 

[출품 작품]

 

 

The sunlight in the Botanic Garden, 차유림, 48.5X68cm, 수채화, 2018

 

 

 

 

나의 스무살과 엄마의 스무살, 애정을 담아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네, 차유림, 55X46cm, 수채화, 2021

 

 

 

 

 


 

 

 

 

삭막한 도시 속에서 우리의 관계 또한 삭막해진다 생각한다.

 

 

하지만 난 인간관계가 삭막한 도시가 아닌 푸른 숲이길 바란다.

 

 

그 숲을 이루는, 다양한 나무들로 타인을 표현함으로써 타인의 다양한 성향을 타호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 신필균 작가 노트 중에서 -

 

 

 


 
 

[출품 작품]

 

 

 

 

타호-Balance Check, 신필균, 51X28X14.4cm, wood, 2022

 

 

타호-Shut out the Rain, 신필균,28.5X18X51cm, wood, 2022

 

 

타호

 

사람은 사회적 활동을 하며 관계를 형성해 나아간다.

주체인 개인과 개체인 타인이 관계의 시작이라 생각하며

모든 사람이 누군가의 타인이고 나 또한 누군가의 타인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작업한다.

내가 생각하는 사람의 단순한 형태를 캐릭터로 나타내어 타인을 표현한다.

타인과 이름 호 자를 붙여 캐릭터를 타호라 정하며 몸에 끈 처리를 함으로써 나의 주관적인 해석을 표현하였다.

 

사람은 관계이며 관계는 소통이라 생각하기에 타인을 형태화 시킨 타호를 통하여 개인과 타인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내적 영향을 시각화 시킴으로써 작품을 통하여 관객과 소통하고자 한다.

 

 

 


 
 
타호-극복(Hommage. 최종병기의 활), 신필균, 31X16X52cm, wood, 2021

 

 

타호-'복'사냥I(Feat. 임인년), 신필균, 17.5X25.5X4cm, wood, 2022

 

 

타호-유지경성(Collabo. 백범 김구), 신필균, 25X25X7cm, wood, 2021

 

 

타호-필생즉사 필사즉생(Collabo. 이순신), 신필균, 23X31X7cm, wood, 2021

 

 

워너비(Want to Be) 시리즈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장점과 단점이 존재한다.

 

관계를 형성함에 있어 장점과 단점은 많은 경우와 상황을 나타나게 하며

개인 각각의 방식으로 관계를 풀어나가고 있다 생각한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내가 더욱 드러내고 싶고 드러나길 바라는,

반대로 보여 지지 않고 보이고 싶지 않기에 숨기거나 극복하길 바라는 각자 만의 이상적 모습이 있다 생각해왔다.

 

그러한 이상적 모습을 타호를 통해 표현함으로써 우리가 원하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대면하고자 한다.

 

다양한 매체 속 등장인물의 성격을 바탕으로 작품을 해석하며 등장인물을 오마주 하여 타호를 통해 표현함으로써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이 공감과 대리적 만족을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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