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벤투스 과거 로고

유벤투스(Juventus Football Club S.p.A.)

1897년 11월 1일 창단됐고, 이탈리아 토리노에 적을 둔 클럽이다.

우리나라에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소속되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세리에 A 우승 36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등

현재 세리에 클럽 가운데 스쿠데토(우승)을 가장 많이 차지한 구단인 유벤투스의 경력에는

세리에 B 우승(2006-07)이 어울리지 않게 박혀있다.

어떻게 된 것일까.


칼초폴리를 들어보셨는가.

칼초폴리란 이탈리아어로 Calciopoli.

단어 자체는 90년대 이탈리아 제1공화국의 부정부패를 드러낸 '탄젠토폴리(Tangentopoli) 스캔들'에서 유래하였다.

'칼초'(calcio)는 이탈리아어로 축구를 뜻한다.

의역하자면, 축구 부정부패 쯤이 되겠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하다.

1998년 7월 AS로마의 감독 즈데넥 제만이 유벤투스의 금지약물 복용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이탈리아 검찰은 유벤투스에 대한 전반적 조사에 들어갔고

그 과정에서 감청을 시작했다.

그때, 루치아노 폴리(유벤투스 단장)가 이탈리아 축구협회 간부에게

유벤투스 경기에 배정된 심판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듣게되었다.


검찰 뿐 아니라 같은 세리에A 소속 구단들 사이에서도 유벤투스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시작되고 있었다.

2006년 당시, 인터밀란에 소속되어 있었던 루이스 피구와 마시모 모라티 구단주가

유벤투스의 수상한 행보에 대해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인테르의 공론화 기사(출처: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139&aid=0000002349)

텔레콤 이탈리아는 유벤투스의 단장인 모지와 UEFA 심판배정 부위원장과의 통화 등 도청 결과 다수를 검찰에 제출했다.


그러나 당시 토리노 검찰청의 수석검사, 마탈레나는 도청내용에 대해

범죄 청탁의 증거로 볼 수 없다며 기소하지 않고 FIGC(Federazione Italiana Giuoco Calcio, 이탈리아 축구연맹)으로

자료를 이관한다.

당시 녹취 내용을 들어보면,

"도대체 누가 그딴 심판을 보낸거야?" -모지

" 그는 최고의 심판이오 ㅋ" -베르가모

하는 등 배정에 대해 둘이 공모했다는 정황은 존재하지 않았다.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상태로 수사가 지지부진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곳에서 터졌다.

나폴리 검찰청에서 도청자료를 토대로 모지가 소유한 에이전시 회사인 GEA월드의

에이전트 계약시의 불법행위 정황을 포착한 것이였다.

사실 이 것은 유벤투스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모지 개인과 그의 아들, 유벤투스의 전 감독인 리피 등 구단 관련 인사들이 연루된 사건이었다.

이후 일련의 조사과정에서

5개 구단의 6명의 인사들이 "심판배정관여 및 판정이득을 얻었다"는 혐의로 기소하였다.


5개 구단은 모두 (유벤투스, 레지나칼초, 라치오, 피오렌티나, AC밀란)이다.

그로 인해 이탈리아 축구협회 차원의 5개 구단의 징계가 이뤄졌는데,

1차 판정

2차 판정

최종 판정

유벤투스 FC

세리에 C 강등, 승점 -30

세리에 B 강등, 승점 -17, 2시즌 우승 박탈

세리에 B 강등, 승점 -9, 2시즌 우승 박탈

레지나 칼초

잔류, 승점 -15

잔류, 승점 -15

잔류, 승점 -11

SS 라치오

세리에 B 강등, 승점 -7

잔류, 승점 -11

잔류, 승점 -3

ACF 피오렌티나

세리에 B 강등, 승점 -12

잔류, 승점 -19

잔류, 승점 -15

AC 밀란

세리에 B 강등, 승점 -15

잔류, 승점 -8

잔류, 승점 -8


모두 다음과 같다.

최종 판정에서 유벤투스는 5개 팀 중 가장 무거운 강등과 2시즌 우승 박탈 중징계를 받았다.

2015년 9월 9일 이탈리아 대법원 최종 판결문이 공개되었는데,

판결문을 살펴보며 유벤투스의 범죄 내용을 살펴보자.

I giudici sottolineano l'"irruenta forza di penetrazione anche in ambito federale" dell'ex dirigente bianconero.
대법관들은 전 유벤투스 단장이 "축구협회 등의 공식기관들까지 뒤흔들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쥐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Dell'ex dg juventino, la Suprema Corte dice che aveva una "poliedrica capacità di insinuarsi, 'sine titulo', nei gangli vitali dell'organizzazione calcistica ufficiale (Figc e organi in essa inseriti, quali l'Aia)". Senza timore di cadere in "enfatizzazioni", secondo la Cassazione, Moggi aveva una "incontroversa abilità di penetrazione e di condizionamento dei soggetti che si interfacciavano" con lui.
전 유벤투스 단장은 "다각적으로 공인 축구 기관(FIGC 및 그 산하 조직)들의 핵심을 파고드는 능력을 가졌다"고 대법원은 말했다. 또한 "과장을 일절 섞지 않고서도" 모지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첨언했다.

Nelle sue "incursioni negli spogliatoi degli arbitri, al termine delle partite, non solo non lesinava giudizi aspramente negativi sull'operato dei direttori di gara, ma esercitava un potere di interlocuzione aggressiva e minacciosa, frutto soltanto di un esercizio smodato del potere - scrive la Cassazione -. Emblematici gli episodi che riguardarono l'arbitro Paparesta e il guardalinee Farneti".
"경기가 종료되면 모지는 심판들의 라커룸에 진입하곤 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판정들을 강경하게 비난함은 물론 공격적인 언어로 심판들을 위협하기까지 했으며, 이는 과도한 권력 행사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고 대법원은 명시한다. 파파레스타 주심과 파네티 선심에 대한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L'influenza di Luciano Moggi si estendeva anche su Il processo del luned? - trasmissione condotta all'epoca da Aldo Biscardi -. Ad esempio, affinch? nel corso della trasmissione sportiva specializzata "venisse espresso un giudizio tecnico favorevole", dal commentatore ed ex arbitro Fabio Baldas, sul conto dell'arbitro Tiziano Pieri che aveva diretto Bologna-Juventus, partita contestatissima e vinta uno a zero dai bianconeri il 12 dicembre del 2004. I supremi giudici rilevano che sono emerse "conversazioni significative" tra le quali una tra Moggi e Baldas e l'altra tra Baldas e l'ex designatore Pierluigi Pairetto "in cui il primo chiarisce al secondo la tecnica di applicazione della moviola per evitare di far risaltare i gravi errori commessi dall'arbitro in quella partita, a favore della Juventus".
모지의 입김은 월요일 알도 비스카르디(유명 축구 캐스터)가 진행하는 방송까지 이어졌다. 예를 들어 2004년 12월 12일 유벤투스가 0:1로 승리한 볼로냐-유벤투스 경기에서 논란이 되는 판정을 한 심판 티지아노 피에리를 옹호하기 위해, 해설자이자 전직 심판인 파비오 발다스로부터 스포츠 전문 프로그램에서 "유리한 기술적 견해"를 얻어냈다. 대법관들은 이와 관련해 모지와 발다스 사이, 발다스와 전직 심판배정관 피에르루이지 파이레토 사이에 "유의미한 대화"가 있었음을 확인했으며, "이 통화에서 모지는 발다스에게 해당 경기에서 심판이 저지르고 유벤투스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오심이 드러나지 않도록 영상장치를 어떻게 조작할 지를 설명했다.

요약해보면 유벤투스 단장(모지)은

공인 축구 기관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만큼의 권력을 가진 상태였으며

이를 이용해 세리에A 심판진들에게 유벤투스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리도록 협박했고,

언론 프로그램까지 장악해 유벤투스에게 이로운 이야기를 하도록 요구했으며

심판배정관과 전직 심판을 포함해 유력 인사들과 함께,

유벤투스에 유리하게 작용된 오심이 드러나지 않게 영상장치를 조작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탈리아 축구계 뿐 아니라 전 세계 축구계가 충격에 빠졌으며

1980~1990년대 흥행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던 세리에A가 몰락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연도별 리그 UEFA 포인트(보통 이것으로 리그의 수준을 매긴다)

2006년의 그래프를 보면 줄곧 라리가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던 세리에A가

영국 프리미어리그에 2위를 내주는 상황이다.

칼초폴리는 2010년대 후반까지 이탈리아 축구계를 장기 침체로 빠뜨렸으며

엎친데 덮친 격으로 2011-2012 시즌 승부조작 혐의로 50여명이 체포되면서

세리에A는 범죄리그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알레산드로 델피에로

유벤투스의 판타지스타 델피에로.

2000년대 해외축구를 즐겨보셨던 분들에게는 친숙한 이름일 것이다.

델피에로는 2001년부터 안토니오 콘테의 뒤를 이은 유벤투스의 주장이었다.

2006-2007시즌 칼초폴리 사건으로 인해 유벤투스는 2부리그로 강등되었다.

델피에로의 실력은 매우 출중했기에 맨유를 포함한 타팀에서 활발한 관심과 이적요청이 쇄도했다.

이때 그는

신사는 숙녀가 원할 때 떠나지 않는 법입니다.

라고 말하며 팀에 남는다.

덧붙이자면, 유벤투스의 팬들 별명이 '올드레이디'이다.

그것을 이용한 일종의 언어유희인데,

유벤투스 선수들은 팬들을 떠나지 않겠다는 뜻이다.

델피에로 말고도 유벤투스를 위해 팀에 남은 선수들은 다음과 같다.

"다비드 트레제게, 파벨 네드베드, 잔루이지 부폰, 마우로 카모라네시 등"

그들에 대한 유벤투스 팬들의 사랑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델피에로는 강등된 바로 다음 시즌에 세리에B를 폭격하며 팀을 다시 승격시킨다.

그리곤 세리에A 복귀 시즌에 21골을 득점하며 득점왕을 수상한다.

그 때 그의 나이 34세였다.

이후 노쇠화로 인해, 선발과 교체를 오가며 유벤투스에 헌신했다.

예전만큼의 환상적인 기량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특유의 리더십과 센스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2012년 5월 13일.

이미 리그 우승을 확정한 이후, 이탈란타와의 리그 최종전에 델피에로의 축구인생 마지막 경기가 펼쳐진다.

전반 28분 득점까지 성공하며 마지막 경기에서까지 판타지스타란 무엇인지를 보여줬고

후반 교체되는 순간 알리안츠아레나(유벤투스 홈구장)에 모인 모든 관중, 상대팀 선수들까지

열렬한 기립박수를 받았다.

유벤투스를 미치도록 사랑한 판타지스타의 마지막 불꽃은 그렇게 타들어갔다.

2012-06-30
이제 끝입니다. 저와 유벤투스와의 계약은 오늘로서 막을 내립니다.
꽤 오래된 뉴스이긴 해도 공식적이란 말은 꽤 강하게 다가오는군요. 제게는 슬픈시간은 아닙니다. 전 어떤 후회도 회한도 없습니다. 요즘 전 제가 비안코네리로 지내왔던 지난 시즌들과 추억들 그리고 저의 꿈이 실현되고 있었던 그 순간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수많은 추억들과 기쁨과 환희, 그리고 솔직하게 인정해서 요 근래의 쓰라린 순간까지 오늘 확실하게 보여지고 있었고 토리노에서 가진 나의 마지막 경기후 나눈 포옹 속에서 어느 순간 떠올려진 순간들이 희미하고 거의 사라져가는 것 까지도 보여지더군요. 5월 13일에 찍힌 제 사진에는 제가 영원히 간직하고픈 모든 것들이 제 마음에 영원히 세겨져 있습니다. 잊혀지지 않을 추억으로 말입니다.

얼마전 휴가를 떠나기 앞서 비노보에 있는 제 락커룸을 정리하고 훈련장을 떠날 때, 여러분이 저와 사진을 찍거나, 제 사인을 받기 위해, 또는 저와 악수를 하기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땡볕이 내리쬐는 한 여름 낮이거나 절 기다리시는 걸 몇 개월 동안이나 해 오셨던 팬들 여러분이 기다리고 계시던 그 장소에 멈춰 선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제가 여러분에게 작별의 인사와 그동안 저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에 대해 감사드린다는 차례가 되었군요.

선수들은 왔다 갈 뿐이지만 유벤투스는 계속 남아있습니다. 나의 팀동료들도 거기에 있을 것이며 아울러 전 그들에게 무운을 빕니다. 전 언제나 그들의 열렬한 팬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제 팬들 역시 계속 남아계실 것이고 바로 여러분들이 유벤투스입니다. 여기 남겨진 제 유니폼 역시 전 계속 가감없이 사랑할 것이고 존중할 겁니다. 넘버 10이 들어간 제 이름이 세겨졌던 제 유니폼이 내 후의 어떤 이가 입을 것을 생각하니 행복감이 넘칩니다. 아울러 전 그 유니폼을 입게 될 그 누군가 —그가 이탈리아인이든 다른 해외출신이든— 에게 기쁨을 느낍니다. 그 역시 이 유니폼을 그토록 입기를 희망했었을테니까 말이죠. 아울러 그 누군가가 나의 발자취를 따라가고자 한다면 제가 저 이전의 레전드들과 챔피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자 했었던것과 같이 그러려고 한다면 제겐 더 없는 영광이 될 거구요.

내일부터 전 더 이상 유벤투스의 선수가 아닙니다. 그러나 전 언제나 여러분들 중 한명으로 남아 있을 거예요.

자 이제 새로운 모험을 할 차례로군요. 19년전의 그때의 여름과 같이 전 지금 굉장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그리고 여러분 모두들 고맙습니다.

알레산드로

그가 유벤투스를 떠나며 팬들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유벤투스팬들은 그를 보내며 눈물의 도가니가 되었고

그는 유벤투스를 떠나 호주리그로 이적하며 선수생활 막바지를 준비했다.

그리곤 2015년 은퇴했다.


아직까지도 델피에로는 팀의 위기상황에서도
끝까지 의리를 지키며 헌신한 유벤투스의 슈퍼레전드이자 판타지스타로 기억되고 있다.

칼초폴리 사건과 유벤투스 선수들은 별개로 생각해야한다.

칼초폴리는 유벤투스 단장이었던 모리의 단독 범행으로 밝혀졌고

운동장에서 최선을 다했던 선수들은 죄가 없기 때문이다.

모리의 범죄로 가장 피해를 입은건 유벤투스에 헌신했던 선수들과 팬일 것이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델피에로 같은 스타는 더이상 팀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라고 외칠 때,

"신사는 숙녀가 원할 때 떠나지 않는 법입니다."

라고 이야기하며 남은 그는

돈주고도 못 살 유벤투스 팬들의 영원한 지지를 얻었다.


우리는 종종 순간의 이익을 위해, 영원의 가치를 포기한다.

순간 닥칠 위기의 두려움은 미래를 볼 수 있는 혜안을 멀게 만든다.

델피에로의 로맨틱한 결정을 보며 기도하자.

" 내 고난과 역경에도, 밝은 미래를 볼 수 있는 혜안을 주소서." 라고

두려움은 잠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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