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좋아하던 한 소년이 있었다.

 

학교에 다닐 시절, 그는 도서관에서 일하는 누나를 보곤 사랑에 빠진다.

 

그 도서관은 할아버지와 누나, 이렇게 두명이서 운영되었는데

 

소년은 부끄러운 나머지 말을 붙일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매일매일 도서관을 다니며 그저 바라만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몇 년이고 눈으로만 담던 그 여인을 뒤로한 채, 

 

야속하게도 국방부는 그를 부른다.

 

그는 한마디 말도 못하고 군대로 떠났고,

 

도서관에는 매일 오던 소년이 발길이 끊겼음에도 불구하고

 

일상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는 군대에서도 그녀를 잊지 못했고, 

 

그녀를 다시 볼 수 있는 휴가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하루하루 지독한 군생활을 버티고 있었다.

 

마침내 휴가날.

 

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 곳엔 그가 하염없이 그렸던 그녀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할아버지와 그녀가 있어야 할 그곳엔, 어느 낯선 사람만이 다리를 꼬고 앉아있을뿐이었다.

 

다급해진 그는 낯선이에게 그녀의 행방을 물었지만, 

 

어느 먼 곳으로 떠났다는 이야기 뿐이었다.

 

제대한 후에도 한 순간도 그녀를 잊지 못하며 방방곳곳 찾아 헤멨지만,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그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을 하게 된 후에도 그의 마음 한켠엔 그 여인이 남아있었다.

 

그는 종이에 그녀를 생각하며 문장을 써내려갔다.

 

 

 

즐거운 편지

 

황 동 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메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 시인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위의 이야기는 황동규 시인의 실제 이야기다.

 

그가 결혼해서도 그녀를 잊지 못하고 이런 시를 썼다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이 있기도 하다.

 

그가 이런 시를 쓴 배경에는, 물론 그녀를 아직도 잊지 못해서의 이유도 있겠지만

 

그 시절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던 기억이 그리워 썼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첫사랑을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그 때의 아련한 기억과 분위기, 또 본인의 서툴렀던 모습들이

 

첫사랑의 기억을 수식하며 미화한다.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것은 지난 나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

 

황동규 시인이 그녀를 찾아서 다시 만난다면, 

 

매일매일 도서관을 다니던 그 소년의 마음으로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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