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히만의 실제 법정에서의 모습

 

 

1960년, 초라한 차림의 평범하게 생긴 한 중년의 남성이 포승줄에 묶인 채 이스라엘 법정에 들어왔다.

 

그에게 적용된 죄목은 총 15개.

 

살인죄, 인도적범죄, 전쟁범죄, 불법 조직 가담죄 등등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무죄입니다."

 

"신 앞에서는 유죄라고 느끼지만, 법 앞에서는 나는 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15개의 끔찍한 죄목을 저지른 남자. 그에겐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돌프 아이히만

 

 

아돌프 아이히만.

 

그 평범한 남자는 제 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전범으로

 

독일의 SS 중령(최종계급)으로서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을 맡아한,

 

즉 유대인을 박해하고 말살한 실무 책임자였다.

 

그가 무죄를 주장한 이유를 대화를 통해 살펴보자.

 

 

"나는 독일 정부에 나치당이 정권을 잡고 있을 시기 근무했던 독일 공무원이었습니다."

 

"상부에 명령에 따라 단지 그들(유대인들)을 수송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 시킨 명령을 철저하게 시행했을 뿐입니다."

 

"그 일(학살)은 그당시 독일에선 합법이었습니다."

 

"내가 만약 그 명령에 불복종하고 저항했다면 그것이 바로 법에 따른 죄 일것입니다."

 

그의 법정에서의 항변에 대중들은 분노했다.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전세계적으로 크게 이슈가 된 만행을 저지른 실무책임자가

 

본인은 하나의 죄도 없다는 이야기를 무려 생중계로 듣고 있었다.

 

 

당시 상황

 

 

재판부는 이런 주장을 하는 아이히만에게 정신적인 중대한 결함이 있을 것으로 봐서

 

정신과 의사 6명에게 정신감정을 의뢰한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의사1 : 이 사람의 정신은 지금 나의 정신보다 훨씬 더 정상적입니다.
의사2 : 이 사람은 누군가의 좋은 이웃이고 좋은 아버지고 좋은 남편일 수 있는 사람이다.
성직자1 : 상당히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다.

 

대중들은 그가 공감하지 못하는 무언가 정신적인 병이 있거나

 

중대한 정신적인 결함이 있을 것으로 100% 생각했는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는 지극히 평범했으며, 당장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무방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 이후 33번의 재판을 더 거치게 되었다.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중대한 전쟁범죄의 1급 전범이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에 있어서 우리가 비판할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아돌프 아이히만

 

 

아돌프 아이히만이 나치에서 일하기 전에는 광산에서 일하는 평범한 노동자였다.

 

그 후 북오스트리아 지방에서 전기설비회사 외판원으로 약 2년간 재직한다.

 

노동자 & 외판원은 그 당시 전형적인 서민의 직업이었으며

 

독일 인구 중 가장 많은 인구가 종사하던 직종 중 하나였다.

 

한마디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다.

 

재직 중 그는 나치당에 가입한다.

 

지금에서야 나치당이라고 이야기하면, 그 악의 본질격인 악마집단! 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당시 나치당은 1차 세계 대전 이후로 수많은 전쟁배상금으로 지쳐가던

 

독일 국민들에게 나타난 한줄기 빛이었다.

 

아이히만도 특별한 사상적 동질감이나 중대한 정치적 이유가 아닌

 

단지 나치당에 가입을 하면 약간의 돈을 준다는 소문과

 

지인의 추천으로 가입한 케이스었다.

 


 

아돌프 히틀러

 

 

그렇다면 아이히만은 언제부터 나치당에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을까?

 

그 이유를 살펴보기 위해선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 정책을 알아보아야한다.

 

히틀러는 처음부터 강경한 유대인 탄압 정책을 시도하지 않았다.

 

단계적으로 그들을 옥죄기 시작했는데,

 

그 시작은 이렇다.

 

1. 1933년 히틀러가 독일의 총리 자리에 올랐을 때, 유대인은 제 2급 시민으로 강등시켰다.

 

이는, 유대인이 일반대학에 진학할 수도 졸업할 수도 심지어 공직자가 될 수 없음을 의미했다.

 

2. 1935년 히틀러가 독일 국민에게 최고의 지지를 받고 있을 시절, 뉘른베르크에서 나치 전당대회가 열린다.

 

그 때 통과된 법이 바로 일명 '뉘른베르크법'이다.

 

이 법령에 따르면 더이상 유대인은 독일인과 결혼할 수 없고

 

성관계를 할 수 없으며, 공무담임권을 정지했다.

 

이를 어길 시, 강제 노역형에 처한다.

 


히틀러의 독일인이 유대인을 알아서 배척했으면 하는 바램은 1938년 마침내 이뤄졌다.

 

독일 전역에서 나치대원들이 유럽에 있는 유대인 상점 7500개의 유리창을 다 깨부순 것.

 

이를 '크리스탈나흐트(Kristallnacht)' , 수정의 밤이라고 부른다.

 

 

크리스탈나흐트

 

 

바로 이때를 기점으로 나치당이 그렇게 원했던 

 

유대인과 독일인의 물리적, 정신적 격리가 시작되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독일의 유대인 추방과, 수용소 격리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그 즈음 아이히만은 나치의 공무원이었고, 그의 역할은 유대인을 수용소로 운반하는 수송역할이었다.

 

이 부분에서 아이히만의 천재적 행정 능력이 발휘된다.

 

아이히만은 유대인의 재산을 효과적으로 몰수하고 격리시키기 위해서

 

유대인 전용 행정기관을 하나 세운다.

 

그 기관은 지금 이야기하면 유대인을 대상으로 ONE-STOP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치 입장에선 그는 정말 일을 잘하는 공무원이었고

 

유대인 입장에선 그는 세상 모를 악마였던 것이다.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에서 그는 전세계를 휘든들 수 있는 폭로를 하게된다.

 

유럽 전역에 흩어져있던 약 600만명의 유대인을 독일이 수용소로 보낼 수 있는 이유를 이야기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유대인들의 도움' 이라는 것이다.

 

나치당에 있었던, 쉽게 이야기하면 완장찬 유대인들(유대인 장로회)이 본인의 안녕과 영위를 위해서

 

자기 민족을 팔아넘긴 것이라는 이야기.

 

심지어 수용소로 끌려간 어떤 유대인은, 수용소로 끌려가는 내내 단 한 명의 독일인도 마주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유대인이 유대인 자신들을 죽음의 가스실로 보냈다는 잔인한 진실이다.

 


이로 인해 아이히만은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천재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자부심에 싸여있었는데,

 

그 이유는 오히려 유대인이 독일을 떠나는 것이 그들에게 더 나은 방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더이상 유대인에 대한 존중은 남아있지 않았다고 그는 주장했다.

 

(아직 대학살은 시행되기 전이였다. 독일에서 유대인의 추방만이 이루어질 때.)

 


1939년 아이히만은 그 자신이 도덕적으로 심각하게 흔들리게 된 사건을 겪는다.

 

그 사건에 대해 설명하자면 이 즈음 히틀러의 계획이 바뀜으로서 말미암아졌다.

 

원래 그의 계획은 유대인을 다 죽이는 것이 아니라, 외딴 곳에 섞이지 않도록 수용하려고 했다.

 

 

마다가스카르(당시 프랑스령 식민지)

 

 

바로 이 남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 땅에 한데 모아놓으려고 했다.

 

그 책임자가 바로 천재적인 행정시스템을 구축했던 아이히만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니,

 

수백만명을 이주시키기 위해선, 천문학적인 예산과 오랜 시간, 그리고 막대한 행정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치 중앙당은 계획을 바꾼다.

 

'절멸'으로.

 


<홀로코스트>

 

다들 들어본 단어일 것이다.

 

2차 대전 중 독일이 저지른 가장 악독한 범죄이자 전 세계 전무후무한 대학살.

 

그 수정 계획이 담긴 문서가 아이히만에게 도착한다.

 

그 때 처음으로 아이히만 본인이 심하게 동요했다고 회상한다.

 

나치당은 실무자들의 동요를 우려해 각종 전달문서에 절대 '학살'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고

 

'최종해결책' 이나 '재정착'처럼 그들의 죄책감을 최대한 줄여줄 단어를 사용했다.

 


1941년 아이히만은 유대인 수송 전문가로 꽤 이름을 날리게 된다.

 

그는 폴란드 서부 지역의 학살센터를 조사하는 업무로 잠깐 발령이 나게 된다.

 

아직까지 아이히만은 본인이 수송한 유대인들의 종착지가 어디인지 한번도 보지 못한 상태였는데

 

그때 수용소 내부 환경을 처음 보게된 그는 충격을 금치 못한다.

 

지옥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제가 평생 동안 본 것 중 가장 끔찍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트럭에 유대인을 실어, 넓게 파인 구덩이 앞에서 트럭의 문을 열었고,
그리고 시신들이 쏟아져내렸습니다."

"마치 그들이 살아있는것처럼 그들의 사지는 유연했습니다."

"그들은 구덩이 속으로 던져졌고, 한 민간인이 치과용 집게를 이용해 이빨을 뽑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히만의 법정에서의 회고

 

아이히만은 평소 깊은 상처나 피를 잘 못보는 편이여서

 

절대 커서 의사는 될 수 없을 거라던 소리를 학창시절에 종종 듣는 편이었다.

 

그는 살면서 단 한번도 유대인을 원망해본적이 없으며 개인적인 원한을 품은 적도 없었다.

 

그는 유대인 장로회 회장을 개인적 말다툼에 따귀를 때린 것을 후회하며

 

밤잠 설치던 유약한 하나의 시민이었을 뿐이었다.

 

그런 그가 저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으니, 그 충격이 어떠했을까.


그러나 1년 후, 1942년

 

그의 죄책감은 깨끗하게 사라진다.

 

당시 베를린 외곽 반제에서 열린 회의가 있었다.

 

그 회의에선 히틀러를 포함한, 당시 독일의 영웅적 인물들 13명이 참석해 

 

함께 식사도 하고 국가 중대사를 논하는 자리였다.

 

그 회의에 아이히만은 서기로 참석한다.

 

그 때 아이히만 마음 속에 살아있던 일말의 죄책감은 모두 자리를 감춘다.

 

아이히만이 말하기를,

 

"그들은 담담하게 유대인 절멸을 논의했고, 그들의 대화에 따르면 그것은 학살이라고 볼 수 없었다.

 

 단지 그것은 통계였고, 총통의 명령을 충실히 시행하는 공무원이었으며, 나라를 위한 행위일 뿐이었다."

 

"나는 그 때 본디오 빌라도의 감정을 느꼈다."

 

*본디오 빌라도란? : 로마 제국 당시 유대인들이 로마의 왕이라고 사칭하는 예수를 잡아서 당시 총독이었던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발했는데, 총독이 예수와 면담을 해보니 죄가 없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유대인 지도자들의 끈질긴 처형 요청으로 예수를 처형했다.  


아이히만은 본인의 선택으로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한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그러나 본디오 빌라도를 예를 들며 자기방어를 하는 것이다.

 

나 자신은 그저 일개 공무원이며 국가에서 시키는 일을 충실히 할 뿐이라고.

 


그 후 독일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색이 짙어진다.

 

결국 나치 독일은 패망하고, 1급 전범으로 분류되었던 아이히만은 

 

15년간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도피 생활을 한다.

 

1960년, 아르헨티나.

 

정보요원 모사드가 아이히만을 체포했다.

 

그가 이름을 묻자,

 

자신의 이름은 아돌프 아이히만이며 당신이 이스라엘에서 왔다면 나를 잡아 갈 것을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의 태도는 당당했다.


1961년 12월 15일. 아이히만에게 사형이 선고된다.

 

죽기 전 그에게 마지막 부탁이 있냐고 묻자

 

"줄을 좀 헐겁게 묶어주시오. 똑바로 꼿꼿히 내가 설 수 있게."

 

"머리에 두건을 씌워주지마시오. 나는 그런거 필요 없소."

 

그렇게 그는 스스로 뚜벅뚜벅 교수대로 걸어가 목을 매었다.


당신은 아이히만이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독일이 패망하지 않았다면 그의 행동은 악으로 분류되었을까.

 

악의 근원은 무엇인가?

 

악은 악 그 자체로 특별한 것이 아니다.

 

악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며, 당신의 고유 의지로 저지르는 것만이 순수한 악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사회적 규범과 본인에게 들어오는 여러가지의 압박으로 인한 선택도

 

누군가에겐 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평소 니체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 경우, 니체의 자유의지가 가장 절실한 순간이 아닐까 한다.

 

순수하게 나를 돌아봐, 이런 순간이 나에게 왔을 때

 

진정한 악이 무엇인지 판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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