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구원展: 영원한 만족. 바탕갤러리. 세종 자화상展: 나의 삶을 되돌아보다. 향유갤러리. 전주 흐르고 흐르다 보면展, 술술센터, 서울
2021 벨 에포크-평화의 시대展, 갤러리문래, 서울 THE REASON FOR LIFE, 더 뮤지엄 아트진, 충남
2020 삶과 예술展, we trustcoffee, 수원 SEE A LINE, 메이커스유니온스퀘어, 서울
단체전 2022 이만,총총. 성수 볼록. 서울 아트코리아 미술대전 시상전.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 서울 NEST. 8883스튜디오. 서울 RESTART. 앤드뉴갤러리. 서울 비상展. 디쿤스트. 서울 우주 그리고 화성. 아트스퀘어갤러리. 서울 음악의 재해석. 아트스퀘어갤러리. 서울 그냥 하지는 못하는 말, 갤러리 시간을 담다, 서울 End, And, 앤드뉴갤러리, 서울
2021 음악의 재해석展, CGV오리스퀘어, 성남 Zero Breeze, 성산아트홀, 창원 연결 혹은 다수결, 카페어스, 서울 MIXED MEDIA, 57th갤러리, 서울 그리고 새로운, 오솔갤러리, 인천 code blue展, 뮤지엄남해, 남해 소생展, 영통갤러리, 수원 아! 미얀마展, 1898갤러리, 서울 WITH US, 스페이스원오프, 서울 십오인展, 아리수갤러리, 서울
2020 특별한 선물展, 아트필드갤러리, 서울 그리고, 새로운, 57th갤러리, 서울 도시재생, 보이드갤러리, 대구 Gold can art plan, 서궁갤러리, 서울 저마다의 色, 1mspace, 서울 존재하다, wwwspace갤러리, 서울 ART UP WITH YOU, 을지로서울패션벤처타운 지하, 서울 택배로 배송온 미술전시展, 독예실525, 서울 Lights for the future, Corriere dell arte, online exhibition
한 집 한 그림걸기展, 영아트갤러리, 대전 Mayfly, 예술공간세이, 서울 Print sale展, 비움갤러리, 서울 존재의 잔류, ilot, 서울 야관문, ilot, 서울 펜화展: 두가지 선. Coffee 빈센트 반 고흐. 전주
2019 하늘은 사실 하늘색이 아니다, 독예실525, 서울 UPCYCLE YOUR LIFE, sk청년갤러리, 인천 10월에 4번의 칠展, 충남콘텐츠코리아랩, 천안 청계천 업사이클 페스티벌, 청계천, 서울
2018 DREAM, jccac lo갤러리, 홍콩
레지던스 2021 리미술관 레지던스 경남예술문화진흥원 레지던스
아트페어 2022 제2회 하남 프린지아트페어. 하남 스타필드. 하남 제2회 호호아트페스티벌. 꼴라보하우스도산. 서울
2021 서울아트쇼, 코엑스, 서울제3회 리틀아트페어. 아틸라갤러리. 일산 FUN FUN MUSEUM아트페어, 뮤지엄남해, 남해 순천에코아트페어, 순천시 일대, 순천 제2회 리틀아트페어. 서울갤러리. 서울
소장처 2021 뮤지엄남해 1898갤러리 더 뮤지엄 아트진
2020 보이드갤러리
개인소장 다수
When I was young 展 : 작가노트
사람은 다양한 기준을 통해서 자신의 윤곽을 만들어 낸다.
타인의 시선, 직책, 직업, 사회적 입장, 소문 등 타인이 만들어 내고 사회가 만들어 낸 다양한 기준을 통해서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확립하고 자신의 윤곽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자신의 시선이라는 기준을 통해서도 자신의 윤곽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어린 시절 내가 내가 나를 바라본다며 나는 과연 지금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라 아니며 부끄러워할 것인가
이를 통해서 우리는 인식하지 못했던 현재 자신의 윤곽과 자의식을 인식할 수 있다. 또한 어린 시절의 자신이란 무의식처럼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우리의 근본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린 시절의 우리의 추억과 감정 그리고 이상이 현재 내가 걸어왔던 길의 방향성을 잡아준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타인의 시선이나 주변의 환경은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한다.
이러한 기준으로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스스로를 망치는 행위이다.
수백 수천가지 시선과 사회적 환경에서 자신의 윤곽을 찾는 것은 결구 자신을 피폐하고 어리석게 만들 뿐이다.
타인은 결국 타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자신의 시선을 기준으로 자신의 윤곽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린시절 즉 과거의 나를 기준으로 현재의 자신이 윤곽을 인식함으로써
타인이 아닌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고 자신만에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과연 어린 시절 내가 꿈꾸던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순수했던 어린 시절 나의 시선을 다시 한번 마주 보고자 한다.
작품 등장하는 어린 사슴은 어린 시절의 자신을 의미하는 메타포이다.
작품속 사슴은 아직 싸울 의지 즉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 거의 없는
자신의 이상을 정확이 인식하지 못하는 어리숙하지만 순수한 존재이다.
이 작품은 마치 하나의 거울처럼 작품을 보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작품을 보는 순간 서로 마주 보도록 제작되었다.
이 작품을 통해서 관람객은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어린 시절의 자신의 시선을 통해서 현재 자신의 모습과 윤곽을 인식하여 위로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제작하였다.
작품 속 사슴은 두 가지 요소가 합쳐진 메타포이다.
사슴의 육체는 초식 동물의 나약함을 사슴의 뿔은 싸우기 위한 도구로써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의미한다.
이는 하나의 사슴에 모습이 됨으로써 태어나기를 나약한 존재로 태어났지만 싸우기 위한 의지를 가진 존재로써 해석된다.
이는 마치 태어나기를 결핍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삶을 살아가고자 자신의 이상을 추구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진 우리의 모습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속에서 보여지는 사슴은 나의 자화상이자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초상화이다.
작품 속 사슴이 보고 있는 것은 수면에 비친 자신이다.
수면에 비친 모습은 자신의 눈에는 보이지만 그곳에 존재하지 않으며
작은 물결에도 사라질 만큼 덧없지만 자신으로 하여금 큰 영향을 줄 수 도 있다.
이는 마치 과거에 자신에 모습과 같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과거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사라져 버린 과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충격으로도 사라지거나 잊혀질 수 있는
과거의 자신은 무의식 속에 존재하면서 언제나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이 작품은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사슴에 모습을 통해서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며 이를 통해서 과거의 자신 즉 어린 시절의 겪은 경험, 감정, 가치관의 중요성을 표헌한 작품이다.
한 송이에 꽃이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고 그 향기가 누군가의 기분을 변화시킨다.
이처럼 고작 한 송이에 꽃을 통해서 공간과 누군가의 내면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번 작품 속 화면에 등장하는 꽃은 흰색 데이지이다.
흰색 데이지는 순수한 마음과 천진난만함 그리고 순진함을 의미한다.
나는 이런한 흰색 데이지를 하나의 메타포로써 순순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이 작품은 마치 한 송이에 꽃이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는 것처럼 하나의 어린 시절 소중한 추억이 삶의 무게에 짓눌린 자신을 위로하고 크게는 자기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의미를 표현한 작품이다.
각자 어떤 이야기로 인생이라는 자신만의 책을 써 내려갈까? 각자 자신의 삶을 살며 타인인 나를 만나고 나와의 연이 닿고, 당겨지고, 멀어지고, 끊어졌다, 붙어졌다, 완전히 끊어지고..
저기 지나가는 저 사람은 행복할까. 어떤 과거를 지나쳐 어떤 미래를 그리며 어떤 현재를 살고 있을까. 저기 활짝 웃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해서 웃는 건가. 저기 그늘진 벤치에 앉아있는 할머니, 할머니는 지나쳐 온 인생에 대해 후회가 없나요?
하늘나라에 계신 우리 할머니, 당신의 책 한 권에 저는 몇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을까요?
너는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삶을 살고 있니. 지금은 좀 괜찮아졌니.
가끔 그리워, 행복해지는 법을 알지 못했던 그때가. 아팠지만 순수했었기에 아름다웠던.
너의 책에 나는 몇 페이지나 차지하게 될까. 앞으로 나에 대해 쓰일 활자가 남아있긴 할까.
저기요, 인생이라는 엄청난 세월을 담은, 당신들의 책 속 나는 몇 페이지를 차지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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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고 하고 누구는 인생은 홀로 태어나 홀로 죽는 것이라 한다.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 지금 나는 ‘미성숙’ 그 자체다. 아직도 어떤 기분을 가져야 하는지, 어떤 상황에 웃고, 어떤 상황에서 울고, 어떤 상황에서 화를 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거든.
어지러워진 머리를 하나하나 지워내자. 비워내자. 기준을 세우지도 말고 의견을 가지지도 말자. 욕심과 부끄러움으로 가득 차버린 나를 털어내자.
펜을 든다. 점을 찍는다. 흰 종이 위로 떨어진 점들 하나하나에 내 생각들을 담아낸다. 툭툭툭. 떨어지는 무수히 많은 생각 덩어리들.
아, 생각이 사라진다. 이제 좀 숨을 쉴 틈이 난다.
아무 생각도 없는, 의식조차 없는, 무의식 속의 상태에서 내 손만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나는 지금의 상태가 가장 마음에 든다. 정신이 들었을 때 작품이 완성되도록, 무의식 상태인 내가 생각 덩어리들을 계속 털어내 버리자. 모래알 같은 내 생각들의 파편들이, 흔적들이 하나둘 떨어져 종이에 닿을 때, 나는 점점 0으로 향해간다.
머리가 어지럽지 않기를, 아무 생각이 들지 않기를, 평온함만이 남기를, 종이 위로 다 떨어져 버리기를, 0이 되기를.
저는요, 틈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꾸자꾸 쌓여가는 생각 덩어리 때문에 머릿속이 터지겠어요. 머리 용량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는데 생각은 끊임없이 생성되어 빼곡하게 쌓여가요. 터지기 일보 직전인 머릿속의 탈출을 염원하는 무언가들이 뒤섞여 눈물과 한숨이라는 형태로 배출되네요.
저는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요? 왜 이리도 복잡한 것일까요? 제가 흘린 눈물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그대들은 왜 살고 계시나요? 저는 제가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대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계시나요?
생각은 왔다가 갔다가 끊임없이 흐릅니다. 정착하지 않고 유랑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무형의 것을 유형으로 바꾸어 내는 순간 무형이 만들어낸 불완전한 유형 속에 갇혀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언어라는 놈이 참 잔인합니다.
저는 세상이 두렵고 무섭습니다. 이 세상은 불완전하고 왜곡된 것들이 진심이 되곤 합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바빠서 정정할 여유도 없죠. 한없이 작은 저에게 커다란 세상은 따가울 뿐입니다. 상처가 난 살갗에는 공기마저도 따가운 법입니까요.
제가 하는 모든 말이 그대들에게 와닿길 바라지만 이 모든 것들은 정확하지 않은, 그저 조각들일 뿐입니다.
그러나 제 진심이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마음과 마음으로, 진실한 진심으로 소통하고 싶습니다. 저라는 사람의 밑면까지 모든 것을 솔직하고 깊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와 그대들을 완전하게 알고 싶어요.
사람의 감정과 정신 그리고 육체는 서로 연결되어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여전히 감정과 정신을 소홀히 여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감정과 정신을 소홀히 하게 되면 스스로가 어떤 상태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자아가 없으면 인간의 존엄성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 어떤 모습이어도 괜찮다는 자기친절은 소용돌이 치는 감정의 형태를 드러나게 하고 그 마음의 실체를 인지하게 도와줍니다. 이를 기반으로 존재 자체의 아름다움과 색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색들이 가지는 고유의 빛깔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바라보고 아름다움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스스로와 타인의 존엄이 건강하게 존속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색들과 섞여 보는 이의 눌려있던 감정이, 숨어있던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작품들을 보는 순간들이 모여 무거운 세상 조금 덜 무거워지고 쉴 수 있는 실마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정들과 생각들이 존재하는 방식은 섬과 유사하다.
감정과 생각은 개별로 존재하기도 하고 서로가 이어졌을 때 새로운 감정과 생각이 생겨난다.
감정과 감정, 감정과 생각, 생각과 생각이 이어지기 위해선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특정한 사건, 깨달음, 경험 또는 욕구로 표상되는 고리들이 감정과 생각들의 섬을 연결한다.
이렇게 연결된 하나의 제도는 또 다른 제도를 만나 더 커지고 다채로워질 것이다.
이들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노을을 보며 우수에 젖고, 노래를 들으며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때로는 힘든 날의 끝에 그래도 삶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희망에 이르게 한다
경계에 흐르다(In-between; Afterlife) 시리즈(I, II)는 삶에 대한 작가의 고심이 깊어 가던 중
삶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며 죽음과의 연결선상의 시간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시리즈 I 은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찰나를 표현하였다.
숨이 붙어 있던 생명이 하나의 영혼의 고리로 탈바꿈하여 중간 세계를 떠돌게 되는 과정이다.
죽음을 맞이한 모든 요소들은 죽음을 수용하며 자연스럽게 모양이 바뀌고 그림자가 존재하게 된다.
우주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말처럼 자연의 섭리에 의해 삶이 죽음으로 자연스럽게 변형되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시리즈 II 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구조화하고 죽음에 대한 작가의 인상을 색으로 나타내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죽음 후엔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 있을 것이며
그 여정에서 만날 수 있는 상상의 순간들을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
망자를 인도하는 길과 삶 이후의 여행에서 만나게 되는 이벤트들을 구조화함으로써 삶과 죽음의 경계를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