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전 2022 케이옥션 프리미엄 온라인 옥션, 케이옥션 전시장, 서울 2022 아시아프&히든 아티스트 페스티벌,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서울 2021 아시아 호텔 아트페어, 안녕 인사동, 서울 2021 100_0 fair, 백영 갤러리, 서울 2021 offon, 백영 갤러리, 서울 2020 고요하고 요란한, 온라인 전시 레지던시 2022 아트 스텔라 김포
"손으로 만질 수 없는 픽셀 사이를 끝없이 어슬렁거린다. 미디어의 빠른 호흡과 편집, 조작, 배포 과정은 인간의 사유방식을 재구성했다.
단편적인 부분만을 기억하는 것, 빠르게 스킵하려는 것, 쉽게 정리된 줄거리만을 포착하는 것 등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이것은 뒤죽박죽, 탈맥락, 흐릿함으로 형용되는데,
많은 경우 미디어의 이미지들은 어떤 목적이나 필요성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로 알고리즘 세계를 표류한다.
작가는 디지털 이미지를 재구성하여 단속적인 파노라마를 증식한다.
어디선가 본 듯한 출처가 불분명한 이미지는 일상의 모습과 닮은 듯 보이지만 오버스럽고 우스꽝스럽다.
의도되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하는 찰나의 순간, 정갈한 질서 속에서 발견되는 한 뜻의 흐트러짐은 매력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그림과 영상에서 이미지는 여러 개의 작은 화면으로 분산되어 나타나기도, 혹은 하나의 큰 화면에서 만나 새로운 서사를 만들기도 한다.
이미지를 포착하는 시선은 하나의 대상이나 상황에 고착되어 있지 않다.
때문에 일관성이 결여된 듯 보이지만 이미지는 결국 하나의 긴 파노라마에서 끊어지고 이어지길 반복한 결과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비물질로 표류하고 있던 이미지는 현실과 비현실의 색채, 뭉그러지고 늘어난 형태의 조화로 화면에 안착한다.
무리 수적으로 나열된 이미지들은 서로의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
<Game Set> (2022) 시리즈는 작가가 설계한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가 실제로 마주하게 되는 레벨의 모습이다.
게임을 제작할 때 플레이하게 되는 공간을 만드는 레벨 디자인은 게임 몰입도를 결정한다.
레벨 안의 무수히 많은 조명들과 표식 이미지 등은 플레이어가 향할 곳을
은근하게 암시하며, 게임의 완성도와 흥미를 높인다.
작가는 역설적으로 플레이어에게 도움이 되는 요소들을 모두 제거하여 레벨을 구성하고,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형식으로 설계해 플레이어를 극한의 가상세계로 끌어들인다.
이를 통해 현실세계의 모방으로서의 가상세계가 아닌 온전한 가상세계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궁극적으로 작가는 매스미디어, 게임, 가상현실 그리고 세 가지 키워드를 연결하는
시각언어의 역할에 대해 질문하면서 다양한 매체로 이를 정리해 나가는 시도를 한다.
<Gongginori>(2022)는 게임 튜토리얼을 영상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게임 종목은 우리나라의 전통놀이인 공기다.
작가는 짧은 게임 소개와 게임 방법, 게임 오버 이슈 등을 텍스트로 설명하면서도,
이미지를 통해 시공간의 연속성을 배제하고 있다.
시공간의 흐름을 벗어난 영상은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의 릴스 형식과 같다.
디지털 형식들이 인간의 의도와 무관하게 무의식 영역에까지 침투한 것은
특정 행위를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해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영상에서는 AI 캐릭터들이 반복적으로 하나의 춤을 추는 행위로 이를 대신한다.
한편, 오래전부터 해오던 놀이를 새로운 이미지로 제시함으로써 시각언어의 역할을 고찰한다.
매스미디어와 함께 게임은 작가에게 주요 키워드다.
현실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것들, 가령 면허가 없는 아이들이 운전을 하고, 총으로 사람을 쏴 죽이는 것이
게임에서는 가능하며 플레이어도 이를 수용한다.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면대면(face-toface)에서 화면 대화면(screen-to-screen)으로 게임의 방식 또한 변화했다.
상대와의 직접적인 접촉 없이도 원격으로 다른 플레이어를 만나거나,
AI와 겨룸으로써 역할 극적 놀이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게임에 참여하는 순간부터 플레이어는 가상세계의 규칙을 따르는 한편, 게임은 의도적으로 행동반경과 시간을 제약하고 환경을 어렵지만 극복 가능한 수준으로 설정한다.
2022 구원展: 영원한 만족. 바탕갤러리. 세종 자화상展: 나의 삶을 되돌아보다. 향유갤러리. 전주 흐르고 흐르다 보면展, 술술센터, 서울
2021 벨 에포크-평화의 시대展, 갤러리문래, 서울 THE REASON FOR LIFE, 더 뮤지엄 아트진, 충남
2020 삶과 예술展, we trustcoffee, 수원 SEE A LINE, 메이커스유니온스퀘어, 서울
단체전 2022 이만,총총. 성수 볼록. 서울 아트코리아 미술대전 시상전.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 서울 NEST. 8883스튜디오. 서울 RESTART. 앤드뉴갤러리. 서울 비상展. 디쿤스트. 서울 우주 그리고 화성. 아트스퀘어갤러리. 서울 음악의 재해석. 아트스퀘어갤러리. 서울 그냥 하지는 못하는 말, 갤러리 시간을 담다, 서울 End, And, 앤드뉴갤러리, 서울
2021 음악의 재해석展, CGV오리스퀘어, 성남 Zero Breeze, 성산아트홀, 창원 연결 혹은 다수결, 카페어스, 서울 MIXED MEDIA, 57th갤러리, 서울 그리고 새로운, 오솔갤러리, 인천 code blue展, 뮤지엄남해, 남해 소생展, 영통갤러리, 수원 아! 미얀마展, 1898갤러리, 서울 WITH US, 스페이스원오프, 서울 십오인展, 아리수갤러리, 서울
2020 특별한 선물展, 아트필드갤러리, 서울 그리고, 새로운, 57th갤러리, 서울 도시재생, 보이드갤러리, 대구 Gold can art plan, 서궁갤러리, 서울 저마다의 色, 1mspace, 서울 존재하다, wwwspace갤러리, 서울 ART UP WITH YOU, 을지로서울패션벤처타운 지하, 서울 택배로 배송온 미술전시展, 독예실525, 서울 Lights for the future, Corriere dell arte, online exhibition
한 집 한 그림걸기展, 영아트갤러리, 대전 Mayfly, 예술공간세이, 서울 Print sale展, 비움갤러리, 서울 존재의 잔류, ilot, 서울 야관문, ilot, 서울 펜화展: 두가지 선. Coffee 빈센트 반 고흐. 전주
2019 하늘은 사실 하늘색이 아니다, 독예실525, 서울 UPCYCLE YOUR LIFE, sk청년갤러리, 인천 10월에 4번의 칠展, 충남콘텐츠코리아랩, 천안 청계천 업사이클 페스티벌, 청계천, 서울
2018 DREAM, jccac lo갤러리, 홍콩
레지던스 2021 리미술관 레지던스 경남예술문화진흥원 레지던스
아트페어 2022 제2회 하남 프린지아트페어. 하남 스타필드. 하남 제2회 호호아트페스티벌. 꼴라보하우스도산. 서울
2021 서울아트쇼, 코엑스, 서울제3회 리틀아트페어. 아틸라갤러리. 일산 FUN FUN MUSEUM아트페어, 뮤지엄남해, 남해 순천에코아트페어, 순천시 일대, 순천 제2회 리틀아트페어. 서울갤러리. 서울
소장처 2021 뮤지엄남해 1898갤러리 더 뮤지엄 아트진
2020 보이드갤러리
개인소장 다수
When I was young 展 : 작가노트
사람은 다양한 기준을 통해서 자신의 윤곽을 만들어 낸다.
타인의 시선, 직책, 직업, 사회적 입장, 소문 등 타인이 만들어 내고 사회가 만들어 낸 다양한 기준을 통해서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확립하고 자신의 윤곽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자신의 시선이라는 기준을 통해서도 자신의 윤곽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어린 시절 내가 내가 나를 바라본다며 나는 과연 지금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라 아니며 부끄러워할 것인가
이를 통해서 우리는 인식하지 못했던 현재 자신의 윤곽과 자의식을 인식할 수 있다. 또한 어린 시절의 자신이란 무의식처럼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우리의 근본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린 시절의 우리의 추억과 감정 그리고 이상이 현재 내가 걸어왔던 길의 방향성을 잡아준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타인의 시선이나 주변의 환경은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한다.
이러한 기준으로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스스로를 망치는 행위이다.
수백 수천가지 시선과 사회적 환경에서 자신의 윤곽을 찾는 것은 결구 자신을 피폐하고 어리석게 만들 뿐이다.
타인은 결국 타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자신의 시선을 기준으로 자신의 윤곽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린시절 즉 과거의 나를 기준으로 현재의 자신이 윤곽을 인식함으로써
타인이 아닌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고 자신만에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과연 어린 시절 내가 꿈꾸던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순수했던 어린 시절 나의 시선을 다시 한번 마주 보고자 한다.
작품 등장하는 어린 사슴은 어린 시절의 자신을 의미하는 메타포이다.
작품속 사슴은 아직 싸울 의지 즉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 거의 없는
자신의 이상을 정확이 인식하지 못하는 어리숙하지만 순수한 존재이다.
이 작품은 마치 하나의 거울처럼 작품을 보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작품을 보는 순간 서로 마주 보도록 제작되었다.
이 작품을 통해서 관람객은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어린 시절의 자신의 시선을 통해서 현재 자신의 모습과 윤곽을 인식하여 위로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제작하였다.
작품 속 사슴은 두 가지 요소가 합쳐진 메타포이다.
사슴의 육체는 초식 동물의 나약함을 사슴의 뿔은 싸우기 위한 도구로써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의미한다.
이는 하나의 사슴에 모습이 됨으로써 태어나기를 나약한 존재로 태어났지만 싸우기 위한 의지를 가진 존재로써 해석된다.
이는 마치 태어나기를 결핍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삶을 살아가고자 자신의 이상을 추구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진 우리의 모습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속에서 보여지는 사슴은 나의 자화상이자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초상화이다.
작품 속 사슴이 보고 있는 것은 수면에 비친 자신이다.
수면에 비친 모습은 자신의 눈에는 보이지만 그곳에 존재하지 않으며
작은 물결에도 사라질 만큼 덧없지만 자신으로 하여금 큰 영향을 줄 수 도 있다.
이는 마치 과거에 자신에 모습과 같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과거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사라져 버린 과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충격으로도 사라지거나 잊혀질 수 있는
과거의 자신은 무의식 속에 존재하면서 언제나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이 작품은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사슴에 모습을 통해서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며 이를 통해서 과거의 자신 즉 어린 시절의 겪은 경험, 감정, 가치관의 중요성을 표헌한 작품이다.
한 송이에 꽃이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고 그 향기가 누군가의 기분을 변화시킨다.
이처럼 고작 한 송이에 꽃을 통해서 공간과 누군가의 내면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번 작품 속 화면에 등장하는 꽃은 흰색 데이지이다.
흰색 데이지는 순수한 마음과 천진난만함 그리고 순진함을 의미한다.
나는 이런한 흰색 데이지를 하나의 메타포로써 순순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이 작품은 마치 한 송이에 꽃이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는 것처럼 하나의 어린 시절 소중한 추억이 삶의 무게에 짓눌린 자신을 위로하고 크게는 자기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의미를 표현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