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개

거울틀을 가져 오고 나서 그동안 제가 버리지 못하고 방치한 물건들을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여기저기에 방치한 물건들은 그 동안 나를 관찰하고 내 ‘기억과 감정을 저장’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단지 추억뿐만 아니라 공포나 후회 그리고 기억이나 감정의 ‘왜곡과 착각마저’ 저장하고 그대로 방치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혹시 시시콜콜 한 기억이 종종 떠오릅니까?
자주하는 말버릇이 있습니까?

저는 누군가와 대화하던 도중에도 갑자기 어떤 한 단어에 번뜩! 별 일 아닌 예전 기억을 떠올려 말하곤 합니다.
꽤 잘 기억하는 편이고 두서없이 장황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아니면 쓸데없는 물건은 좀 버리라는 말을 들으십니까?
오래된 물건이나 밖에 버려진 물건에 자꾸 시선이 가게 됩니까?

제가 바로 그렇습니다.
망가지고 유행이 지나 쓰지도 않는 물건들을 바로 버리지 못 합니다.
물건을 집안 한 구석 어딘가에 두었다가 이따금 만지면 물건과는 상관없는 옛날 기억이 떠오르곤 합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경험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듣지 않는 옛날 노래 테이프나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 영화의 극장표, 이전에 살던 집 열쇠 등을 넣어둔 운동화 박스 하나 정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오랫동안 쓰던 물건들처럼 감정이나 예전에 했던 말도 낡고 방치되는 기분이 듭니다.
분명 쓸모없어 진 건 아닌데.

이렇듯 서로 상관없는 이야기를 늘어트려 놓고 또 금방이라도 다른 말을 꺼냅니다.



ANTI ROMANCE 76X39.5X9.5cm mixed medium 2021
ANTI ROMANCE mixed medium 77.5X39.5X9.5cm 2021
이기훈 ANTI ROMANCE mixed medium 28.5X38.5X9.5cm 2022
이기훈 ANTI ROMANCE mixed medium 31.5X35X11.5cm 2022




작품 설명

‘감정과 기억의 왜곡, 연속된 현재를 만드는 착각에 대한 이미지’

이번 전시에서는 2021년 ‘ANTI ROMANCE’ 작품을 같이 설치하여,
마치 “그 날 하지 못하고 담아 두었던 말”이나 “아차! 싶어 잊고 싶은 말”, “이제야 뜻을 알게 된 어떤 말” 또는 “입가에 맴돌던 단어”처럼, 지금 다시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작가 노트 

영화 행복한 사전(2013)’에서는 오른쪽에 대해 서쪽을 봤을 때 북쪽의 방향.

책을 넘길 때 짝수 페이지.

숫자 10에서 0의 위치.”라고 정의 하는 장면이 나온다.

 

국어사전에서는 오른-: 명사. 북쪽을 향했을 때의 동쪽과 같은 쪽. 오른편. 바른쪽. 바른편. 우면(右面). 우방(右方). 우측(右側). 우편(右便). 이라 정의하고 있다.

누구는 오른쪽을 정의해 보아라.”라고 했을 때 자신의 오른쪽을 쳐다본다.

이처럼 누구나 알고 있을 거 같은오른쪽을 이해하려면 오른쪽과는 전혀 상관없는 수십 개의 단어를 나열해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사람들에게 어떤 한 가지를 이해시키고자 한다면 또는 나와 다른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자 나누는 대화의 행위는 사실 많은 단어들을 말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각각의 단어를 검증하며 적절한 비유나 예시를 들어야 할 것이다.

간혹 누군가와 이심전심의 경험이 있다면 단지 우연이거나 자신만의 착각 일 수 있다.

 

ANTI ROMANCE 작업노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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