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애,72.7x60.6cm, oil on canvas, 2021

 

어릴 때부터 종종 나는 인간 외의 것이라는 상상에 잠겼습니다. 
정글북의 모글리를 보며 나도 인간 문명 속에 사는 작은 짐승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상상이요.
 화이트 팽을 보곤 나도 하나의 늑대가 된 것처럼 베개와 이불로 보금자리를 짓고 그 집을 지키고 생활했어요. 
시튼의 동물기, 파브르 곤충기를 읽으며 다양한 동물들의 생태 속 나만의 생태가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종종 인간으로 살기 버겁거나 인간 껍데기를 가진 내가 이질적으로 느껴질 때 동물을 보며 나의 초심, 정신적인 조상을 찾고자 했어요. 

22살의 나는 생물학적으로 ‘인간’ 부류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아요. 이 살구색 민둥 피부를 가진 건 인간의 특징이거든요. 그렇지만 정신적인 조상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마음속 이상을 따라가면 나만의 ‘종’을 개척할 수 있을까요. 아직은 자연을 사랑하는 ‘나’라는 캐릭터로 자연과 동화되려고 해요. 꾸밈만으로는 자연에 가까워질 수 없음을 알아요. 구애를 위해 나뭇잎과 깃털로 장식하는 수컷마냥 나의 자연 철학으로 자연에 구애합니다. 나를 받아달라고요. 

어색한 회색의 나겠지만 장엄한 색 중에는 회색은 하나쯤은 있을 테지요.
<작가 노트 중에서>

색색의 자연 속에서 회색의 인간성을 가리기 위해 꽃과 깃으로 치장한 후 자연에게 구애하는 하나의 인간을 그렸습니다. 어찌 보면 공허해 보이는 여성의 시선 끝에는 자연이 자리 잡았습니다. 중앙의 새는 식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성과 동일시되는 그림의 아이콘이자 작가의 자연철학을 단편적으로 나타냅니다.

알(하나의 세상), 31.8.x46.8cm, Guashu painting, 2021

흰 깃을 가진 새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아니 그 새는 곧 나, 그러니까 나는 흰 작은 새라고 가정한다. 
어느 날 둥지에 큰 알이 생겼다. 글쎄 어디서 어떻게 내 둥지로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단단한 알껍데기 때문에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시간이 지나 그 알은 곧 나요, 그 알을 품는 건 당연해진다. 
내가 낳았을 리 없는 그 큰 알이 당연히 내 것이 되었고 그것 또한 곧 나였다. 
시간이 지나 알이 갈라졌다. 검은 흑색조가 눈을 뜨고 나를 마주한다.
 이질감과 대면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평생을 믿어온 신념일까, 또 다른 나의 자아일까, 출처를 잊은 채 검은 털에 큰 몸집인 털들을 바라본다.
나와 다른 신념이라면 다시금 마주할 용기가 있을까 나의 자아라면 그것을 수용할 수 있을까?

<작가 노트 중에서>

알은 하나의 세상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단단한 껍질은 단절과도 같다. 
낯선 알과의 만남, 곧 일부가 된 알. 
하지만 껍질의 해체로 다른세상 둘이 내면에서 합쳐진다면 이 낯섦을 수용할 수 있는가? 에서 출발한 그림이다. 사람은 확장되는 사회 속에 이질적인 본인 모습이나 신념의 충돌 등을 겪으며
내가 아닌 듯한 낯선 감성을 느끼게 된다.
이 낯선 감각을 본인의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가? 작가는 감상자로 하여금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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