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종종 나는 인간 외의 것이라는 상상에 잠겼습니다.
정글북의 모글리를 보며 나도 인간 문명 속에 사는 작은 짐승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상상이요.
화이트 팽을 보곤 나도 하나의 늑대가 된 것처럼 베개와 이불로 보금자리를 짓고 그 집을 지키고 생활했어요.
시튼의 동물기, 파브르 곤충기를 읽으며 다양한 동물들의 생태 속 나만의 생태가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종종 인간으로 살기 버겁거나 인간 껍데기를 가진 내가 이질적으로 느껴질 때 동물을 보며 나의 초심, 정신적인 조상을 찾고자 했어요.
22살의 나는 생물학적으로 ‘인간’ 부류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아요. 이 살구색 민둥 피부를 가진 건 인간의 특징이거든요. 그렇지만 정신적인 조상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마음속 이상을 따라가면 나만의 ‘종’을 개척할 수 있을까요. 아직은 자연을 사랑하는 ‘나’라는 캐릭터로 자연과 동화되려고 해요. 꾸밈만으로는 자연에 가까워질 수 없음을 알아요. 구애를 위해 나뭇잎과 깃털로 장식하는 수컷마냥 나의 자연 철학으로 자연에 구애합니다. 나를 받아달라고요.
어색한 회색의 나겠지만 장엄한 색 중에는 회색은 하나쯤은 있을 테지요.
<작가 노트 중에서>
색색의 자연 속에서 회색의 인간성을 가리기 위해 꽃과 깃으로 치장한 후 자연에게 구애하는 하나의 인간을 그렸습니다. 어찌 보면 공허해 보이는 여성의 시선 끝에는 자연이 자리 잡았습니다. 중앙의 새는 식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성과 동일시되는 그림의 아이콘이자 작가의 자연철학을 단편적으로 나타냅니다.
흰 깃을 가진 새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아니 그 새는 곧 나, 그러니까 나는 흰 작은 새라고 가정한다.
어느 날 둥지에 큰 알이 생겼다. 글쎄 어디서 어떻게 내 둥지로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단단한 알껍데기 때문에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시간이 지나 그 알은 곧 나요, 그 알을 품는 건 당연해진다.
내가 낳았을 리 없는 그 큰 알이 당연히 내 것이 되었고 그것 또한 곧 나였다.
시간이 지나 알이 갈라졌다. 검은 흑색조가 눈을 뜨고 나를 마주한다.
이질감과 대면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평생을 믿어온 신념일까, 또 다른 나의 자아일까, 출처를 잊은 채 검은 털에 큰 몸집인 털들을 바라본다.
나와 다른 신념이라면 다시금 마주할 용기가 있을까 나의 자아라면 그것을 수용할 수 있을까?
<작가 노트 중에서>
알은 하나의 세상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단단한 껍질은 단절과도 같다.
낯선 알과의 만남, 곧 일부가 된 알.
하지만 껍질의 해체로 다른세상 둘이 내면에서 합쳐진다면 이 낯섦을 수용할 수 있는가? 에서 출발한 그림이다. 사람은 확장되는 사회 속에 이질적인 본인 모습이나 신념의 충돌 등을 겪으며
내가 아닌 듯한 낯선 감성을 느끼게 된다.
이 낯선 감각을 본인의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가? 작가는 감상자로 하여금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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